▲전두환 생가 전경찾는 발길이 끊겨서인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서부원
광주 사람이라면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전두환을 모르는 이는 없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도, 1980년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대통령이라고 막힘없이 대답한다. 나아가 '3S 정책'으로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퇴보시킨 정치인, 숱한 공안사건을 조작해 사회의 지성을 마비시킨 독재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이곤 한다.
전두환의 고향은 경남 합천군 율곡면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이 감싸 안은 궁벽한 시골 마을이다. 지금이야 광주대구고속국도 고령 나들목에서 합천읍내 방향으로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지만, 도로가 뚫리기 전엔 사실상 고립된 마을이었을 듯하다. 한눈에 봐도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시간마저 멈춰버린 느낌이다.
합천읍내와 경북 고령을 잇는 지방도로엔 주말인데도 공사장의 레미콘 트럭을 제외하면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 아스팔트 도로가 이렇듯 고즈넉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느 대통령의 생가라면, 고속국도 나들목부터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초행길이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전두환의 경우엔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어림도 없다.
대형버스는 생가가 있는 마을 입구에 주차해야 한다.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충 헤아려 20년쯤 전부터 예닐곱 차례 찾아왔지만, 관광객들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곳이 한때 '관광지'였음을 보여주는 건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공용 화장실뿐이다.
우리 일행이 생가에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마을 주민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낯선 이들의 방문에 반가움보다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안채와 장독대, 마당 등 생가 주변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지만, 아예 인적이 끊긴 탓인지 장난감 모형 집처럼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가는 초가가 아니라 '플라스틱 집'이었다. 생김새는 여느 초가집과 다를 바 없지만, 지붕을 볏짚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이어 얹었다. 초가지붕 관리가 힘든 탓이긴 해도, 그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방증이다.
개인적으로 전두환 생가를 명절 성묘하듯 찾는 이유가 있다. 굳이 '역덕' 아이들과 함께 바쁜 주말 시간을 쪼개 산 넘고 물 건너 방문한 까닭이기도 하다. 바로 생가 입구에 큼지막하게 세워놓은 스테인리스 안내판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전두환이 불세출의 영웅? 이게 안내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