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Pablo de Valladolid(1865)Source: Wiki Common
Prado Museum, Madrid
자신의 능력을 제공하고 궁정의 녹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벨라스케스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연민이나 동질감을 느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또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연습용으로 오랫동안 불평없이 모델이 되어줄, 궁정의 흔하고 만만한 그들을 활용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을 그린 초상화가 유난히 더 친근하면서도 엄숙하며, 깊이와 여운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존엄은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 여겨진다.
열망에 소극적이지 않았던 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스케스 본인은 지위에 대한 열망 또는 집착이 대단했다. 실제로 벨라스케스는 그림에서 뿐 아니라 왕의 친구이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관리로서의 능력이 뛰어나 기사 작위까지 받은 만큼 그의 위상을 한낱 광대나 난쟁이에 비할 바가 아닐 지도 모른다. 야망에 의한 것인지, 명예를 위한 것인지 벨라스케스는 기사 작위를 받는 데 따르는 까다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지위를 얻는 일에 소극적이지 않았다.
혈통은 물론이요, 단 한번도 그림을 돈으로 거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복잡하고 엄격한 절차였지만 왕의 지지와 벨라스케스 본인의 의지로 마침내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기사 작위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리 엄청난 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림을 돈을 주고 팔 수 없는 데다 심지어 당시 스페인 왕궁도 그 권세를 잃어가고 있던 시점이라 자신의 정당한 대가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스케스의 화가로서의 권위와 지위는 왕의 지지를 기반으로 막강함을 발휘했다.
그 막강함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에 대한 자유를 의미했다. 물론 왕의 기꺼운 승인과 위임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대로 마음껏 그리는 자유, 본인이 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사는 자유는 궁정 화가로서 벨라스케스가 누린 놀라운 특권이었다.
일례로 그림과 조각을 사기 위해 로마와 베니스를 방문했을 당시 벨라스케스는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니즈의 그림에 특히나 감명을 받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완성한 라파엘의 그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을 밝혔다.
"라파엘의 그림에는 전혀 끌리지 않는다. 좋은 그림, 아름다운 그림에 관한 한, 베니스가 선두이고 티치아노가 그 대표자이다."
이러한 취향에 충실하게 벨라스케스는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의 힘으로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과 고대 조각들을 본뜬 틀을 수집해 스페인으로 가져갔다. 그 덕분에 지금 프라도 미술관에는 벨라스케스가 이 시기에 구입한 수많은 이탈리아, 특히 베니스의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벨라스케스가 누린 화가의 위상과 특권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Las Meninas'(1565-7)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대상들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마가레트 공주가 그림의 중앙을 당당하게 차지하고는 있지만 이를 공주의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억지스러운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공주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은 물론이고 공주의 옆에서 언제나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난쟁이들, 졸고 있는 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그림을 그린 당사자인 자신의 모습이 떡 하니 그림의 주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렇게 확연히 보여지는 부분을 넘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 뒤로 보이는 벽에 걸린 작은 액자는 얼핏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왕과 왕비로 보이는 두 인물을 그린 초상화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당시 왕과 왕비를 나란히 그린 초상화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문 밖에 서 있는 수행원은 왕과 왕비를 보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갈 길을 재촉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