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보안사 고문가해자 고병천 등에 대한 구상권 행사 촉구 법무부 청원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윤정헌, 이종수, 박박 씨가 법무부 청원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19.6.11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 한국말이 서툰 중년 남성 셋이 번갈아가며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은 모두 재일교포로 1980년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간첩'이라 허위자백했다. 젊은 날을 몇 년씩이나 감옥에서 보냈고, 이후 또 몇십 년을 '빨갱이, 간첩' 손가락질 받으며 보낸 그들은 최근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 확정 판결까지 받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윤종헌, 이종수, 박박 세 사람을 포함한 보안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10명이 '보안사 수사관 고병천씨가 피해자들의 국가배상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자리였다. 고씨는 1970~1980년대 보안사의 여러 간첩 조작사건에 깊이 관여했고, 피해자들 모두가 '가해자'라고 지목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고문수사관 가운데 이례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윤종헌씨 재심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고문한 적 없다'고 거짓 증언했고, 윤씨 재심 무죄 판결 확정 후 위증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민변은 윤씨 등 피해자들의 옛 수사기록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보고서 등에서 고병천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무부가 고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라는 청원서를 기자회견 후 제출했다.
그들의 죄를 묻을 기회가 없었다
첫 번째 피해자 윤종헌씨는 1984년 고려대 의과대학 재학 중 보안사에 끌려갔다. 2009년 진실화해위는 그의 간첩혐의가 조작됐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윤씨는 재심과 국가배상금소송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가폭력의 직접 가해자인 고병천씨가 국가배상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구상권은 한국 정부의 권리인데 당연히 행사해야 한다"며 "알면서도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고병천 같은 악질 고문수사관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가져간 이종수씨는 1980년 한국에 들어왔고 24살 때 보안사에 불법구금됐다. 6년 가까이 복역한 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특별가석방된 그는 형사재판 재심은 "원상복귀일 뿐"이라고 느꼈다. 이씨는 "과거에 우리를 고문하고, 불법연행하고, 온갖 인권유린을 행사한 사람들의 죄를 묻는 기회가 하나도 없었다"며 "그들은 우리를 잡고 어떤 자는 승진하고, 어떤 자는 훈장 받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돼 손자 손을 잡고 평화롭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에 우리 세 명은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개인 시간을 내 여기 와서 여러분(취재진)에게 호소해야 하는데, 그들의 일상생활과 너무 대조적이다. 어디 호소할 창구도 하나도 없다. 직접 고소할 방법도 하나 없다. 왜? (가해자들은) 공소시효라는 법으로 된 벽의 보호 아래 있다. 우리의 젊은 청춘, 귀중한 청춘은 완전히 없어졌다."
1983년 구속 후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 1988년에 풀려난 박박씨는 2010년 재심을 진행하기까지 한국에 오지 않았다. 그는 "(재일교포 간첩 조작사건) 희생자들이 100명이라고 하는데, 돌아가신 분도 있고 한국이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한다고 했다. 이어 "단체나 회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했을 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갚으라고 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해야 하지 않나 상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상식과 정의... "가해자들 반드시 책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