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오프라인 어디든지 간에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전조고 뭐고 그루밍 성범죄로 판단하고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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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커요. 특히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범죄자가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채팅에서 만난 상대가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면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또 앞에서도 말했듯이 비밀을 핑계로 둘의 관계를 주위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전조로 볼 수 있어요. 특히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사진을 요구하거나 온라인/오프라인 어디든지 간에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전조고 뭐고 그루밍 성범죄로 판단하고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해요.
작정하고 다가오는 범죄자를 말끔하게 쳐내기란 쉽지 않지만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조가 느껴졌을 때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도저히 구분이 어렵거나 끊으려 해도 상대가 놔주지 않거나 헤어나올 수 없게끔 계속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하려고 한다면, 가까운 친구부터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알리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미성년)피해자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 봐 혹은 심각한지 몰라서 신고를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에 대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리아 활동가는 피해자 주변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어른들이 안전한 존재, 언제든지 믿고 말할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또한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그루밍 성범죄의 피해를 겪게 되는 경우, 모든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어요.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전조를 알아채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후에 피해자가 안전을 보장 받으며 편견을 두려워 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일도 참 중요하다는 의미예요."
- 이쯤에서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런 '나쁜 어른들'은 어떻게 처벌받고 있나요?
"외국의 경우 영국은 '그루밍법'을 만들어 채팅 앱이나 온라인 등에서 만 16살 이하 청소년에게 성인이 성적으로 접근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최소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고 해요. 캐나다는 형법상 16살 미만 아동·청소년이 설령 자발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요. 또한 '성착취' 피해 학생들이 자신도 처벌을 받거나 고소당할까 봐 두려워 하지 않도록 성착취를 한 상대 어른만 처벌하고 있어요. 참고로 캐나다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우리와 달리 '성매매'란 말을 쓰지 않아요."
- 왜 '성착취'라는 말을 쓰는 거죠?
"좋은 질문이에요. 말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기 마련인데요. '성착취'라는 말을 사용하는 캐나다의 경우,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성인과 성적 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그 책임은 우선적으로 성인에게 있음을 강하게 어필한다고 볼 수 있어요. 어른으로서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고, 성숙한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지요.
'매매'라는 말은 '사고 판다'는 뜻이잖아요? 아동·청소년이 대가를 받고 성인과 성관계를 가졌을지라도 어른과 같은 판단으로 자신의 성을 팔았다고 보지 않는 거죠. 아이들의 '동의'를 '동의'로 보지 않는 거예요. 설령 아동·청소년이 성을 파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어른이 옳다구나 하고 성을 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때문에 '아동·청소년과 성인에게 똑같은 책임이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성매매'라는 말보다 성인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성착취'라는 말을 쓰는 거예요. 성적인 문제에서 성인에 비해 아동·청소년이 더 보호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13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성적인 행동에 대한 자기 의지를 인정하고 있어요. 즉, 13세 이상의 아동·청소년이 성인을 만나 성관계를 가질 경우 저항하지 않거나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판단되면 그 '동의'를 '진짜동의'로 봐요. 그리고 청소년과 성관계를 가진 성인을 처벌하지 않아요.
또한 13세 이상의 미성년청소년이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성관계를 가진 경우, 자기 의지에 따른 결정이라고 판단해서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가진 성인과 동일하게 죄라고 인정하죠. 그래서 '성매매'라는 말을 쓰고요."
- 아,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13세 이상의 청소년인 경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이 되면 '성착취' 어른과 동일한 죄인으로 보고 처벌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피해 학생'일지라도 돈을 받았거나,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될 경우 신고를 하기 어려워요. 오히려 '너도 걸리면 벌을 받게 된다'는 협박에 시달리며 '성착취'의 악순환에 시달리기 쉽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 등 '권리'에 있어서는 19세 이상부터 가능한데 상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성착취' 문제에 있어서는 13세 이상부터는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많이들 비교하는 게 담배예요.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담배를 살 경우 담배를 구매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판매한 어른들을 처벌하잖아요.
그런데 '성착취'를 당했을 경우에는 어른과 동일한 선에 놓고 판단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 범죄로부터 제대로 지킬 수 있으려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동시에 성적자기결정권 역시 존중해 줄 실질적이고 섬세한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말이 좀 헷갈리는데요. '자발적 성매매의 경우, 성착취 어른과 동일한 죄인으로 보고 처벌을 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이때 피해자도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행동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가해자의 형량이 낮아지고, 피해자는 공격하는 판례를 뉴스에서 많이 본 것 같아요.
"중요한 지적이에요. 꼭 필요한 질문이고요. 아동·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건 먼저 아이들이 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성적인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그 인정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시작이구요. 이 말은, 아이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 권리를 제대로 발휘하고 책임까지도 질 수 있는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워 줄 의무가 저희에게, 이 사회에 있다는 뜻이에요."
-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워 줄 의무요?
"네, 아이들이 자기 몸에 대해서, 건강한 성적 가치관에 대해서, 안전하고 인격적인 성관계 등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물론 "애들이 무슨 성이니 섹스니 욕구니 이런 망측한 이야기를 해! 떽!!" 하던 시대에 비해 '성적자기결정권'을 말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권리에 알맞은 '능력'을 키워 줄 제도와 교육이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에요. '성적자기결정능력'에 필요한 좋은 교육과 안전한 보호장치 없이 '성적자기결정권'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부작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청소년이 될 거구요. 권리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능력'을 키워줄 의무가 우리 어른들에게 먼저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