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권우성
1952년생 노아무개씨는 직업이 없다. 이혼한 지 오래라 가족도, 집도 없다. 여기저기 용역을 다니며 하루살이처럼 생계를 이어간다. 실형까지 포함하면 폭력전과만 32회에 달한다. '전과 33범'이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징역 1년을 살고 나온 지 5개월 만에 노씨는 또 범행을 저질렀다. 2018년 11월 술 취한 그가 소주병을 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때린 혐의(공무집행방해)다. 노씨는 전날 오락실에 충전을 맡기고 깜박한 휴대폰을 찾으러 갔는데 없어서 화가나 기계 밑을 발로 차고, 술을 먹었다. 범행을 저지를 때는 만취상태였다.
첫 재판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판사는 이날로 심리를 마치고 약 2주 후에 선고하겠다고 했다. 5월 1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노씨는 또 혼자였다. 혐의 전부 유죄,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징역 8개월에 처하고 피고인을 법정구속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모든 것은 단 2분 만에 끝났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달랐다
그리고 5월 29일 같은 법원 대법정, 검은색 정장에 셔츠를 받쳐 입은 백발의 그가 거침없이 피고인석으로 나아갔다. 다른 피고인 2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변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였다. 점심 후 이어진 재판 때도 이들은 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예우했다.
대법원장 출신 피고인은 역시 달랐다. 수사 단계부터 대법원을 '무대'로 썼던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에서도 이 재판을 검찰과 법원의 대결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민주정제를 시행한 나라에서 법원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수사를 한 사례가 대한민국밖에 어디 더 있는지 묻고 싶다"고 24분간 열변을 쏟아냈다.
대법원 앞에서 피고인석까지 오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피고인을 위해 변호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 재판부에 선입견을 줄 수 있다 등등 그들이 말하는 '피고인의 권리'는 모두가 맞는 말이지만, 모두에게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또 다른 '사법농단' 피고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5일 법원이 접수한 그의 재판장 기피사유서에도 울분, 억울함, 우려 등이 가득하다. 부끄러움을 잊은 분노는 방향을 잃는다. '재판장이 어느 모임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을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제보가 있다'는, 근거도 명분도 없는 의혹 제기에서 나는 그것을 봤다.
기이한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