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청년들은 반나절만에 1300평 모내기를 마쳤다.
이성훈
2단 케이크 같은 1300평 다랑이 논에는 층마다 30여 명씩 청년들이 패를 이루고 섰다. 들판으로 번져 나가는 일꾼들의 메아리를 따라서 텅 빈 논이 금세 연둣빛으로 물들어 갔다. 이날 모인 100여명의 참가자 대부분은 2, 30대 청년으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 건너왔다. 생전 처음 모를 잡아보는 사람도 많아서 정강이까지 쑥 빠지는 뻘에서 서 있기도 버거워 보이더니 이내 적응을 마치고는 한 땀 한 땀 못줄을 채워갔다.
단순한 농촌봉사활동은 아닐 텐데, 이 많은 청년들은 어쩌다 농촌을 찾아온 것일까.
"농촌에 왜 왔냐면요..."
청년들에게 농촌이란 어떤 공간일까? 이들은 왜 소중한 휴일에 굳이 힘든 농사일을 하러 온 것일까? 그 이유를 참가자 6인에게 물어보았다.
#1. 서울 핸드메이드 작가, '자야'
"저는 귀농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해요. 지금까지 모심기는 3번 정도 해봤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토종벼 종자를 280가지나 심을 수 있어요. 정말 특별하죠.
#2. 서울에서 온 청년, '아름'
도시에서 사는 건 자꾸 미래, 내일을 생각하라고 하잖아요.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집만 사면... 그러면서 정작 현재는 밀려나죠. 하지만 저는 현재를 돌보고 오늘에 만족하고 싶어요.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 같은 '도시 촌놈'들은 자본주의속에서만 살아와서 쇼핑할 줄만 알지 뭘 만들 줄 모르잖아요. 저는 김치 담그는 법도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봐야 하거든요. 이러다 우리가 전통을 잊으면, 그 삶의 흐름이 끊기는 건 아닐까 두렵네요.
#3. 직업군인, '비트'
"저는 자급하는 삶을 살면서, 필요한 기술과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어요. 행사를 주최한 <비전화공방>은 전기나 화학물질에 의지하지 않고도 만족하는 삶을 알려주면서, 자급이 곧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정신이 좋아서 왔습니다."
#4. 서울 성북문화재단 제철과일팀, 윤영섭
저는 서양 레스토랑 요리사였어요. 좋은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은 거죠. 좋은 음식을 먹기 직전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것인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 사실 4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그때도 이곳 담당자는 토종벼 재래농법을 살리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하셨는데, 그 결실이 궁금해서 다시 왔죠. 그리고 그 결실은 이 많은 참가자들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든 사람이 많을수록 즐겁잖아요.
#5. 부천시 청년, '주'
다른 존재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고 싶지 않아요. 도시에 살면 동물, 다른 약자들을 착취해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려면 우선은 농사를 해서 먹거리 자립을 해야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 시골로 내려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부터 천천히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생활하려면 최소한의 돈은 벌어야 하니까, 제가 가진 목공술을 더 가다듬어서 필요한 만큼만 벌고 싶어요.
#6. 서울 고등학생, '인희'
점점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는 힘들겠지만 마을을 이루고 조금씩 도우면서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옛날 분들은 다 그렇게 살아왔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만 알고 살았는데, 계절이 더 있대요. 하지 동지 이런 절기들마다 땅이 다르고 공기도 미세하게 다르대요. 그것도 느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