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기차역입니다!어디 무슨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죠. 보기만해도 근사하다, 탄성을 자아내는 톨레도 기차였입니다.
이창희
"네가 빌린 차, 수동이야. 괜찮겠어?"
렌터카 사무실의 직원은 내가 수동을 운전할 줄 알까 하는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내면서 여러 번 다시 묻는다. 마치, 수동 차량을 운전하겠다는 것은 장마철에 에어컨 없는 차를 운전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다. 아마도 내가 수동변속기를 가진 무적의 엘란트라를 20년 가까이 몰았다는 것을 말하면 놀랄 것 같아서, 참았다.
유럽은 아직도 수동 변속기를 가진 차량이 더 많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수동 변속기를 가진 차량은 좀 더 저렴하게 빌릴 수 있으니 나에겐 유리한 선택이다. 이런저런 사항을 확인하고 나서 차량을 받았더니, 오전 11시 반이 넘었다. 이렇게 되면 오늘의 일정이 모두 틀어지는데, 렌터카 회사 직원한테 항의를 해 봤자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부랴부랴 숙소를 나서서, 원래 목적지였던 코르도바로 내비게이션을 설정한다. 도착 예정시간이 오후 3시 반이라고 하는데, 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과 함께 운전을 시작했다. 오늘 중으로 그라나다에만 들어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1시간 정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기에 '안달루시아'라는 지역명이 표시된 전화가 울린다.
"너 오늘 언제 와? 체크인 카운터 근무 6시까지니까, 늦지 마!"
오늘 머물기로 한 그라나다의 숙소에서 걸려온 전화이다. 이렇게 되면 코르도바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급하게 서둘러서 메스키타(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만 보고 온다고 해도, 돌아오는 길이 너무 바쁠 것 같다.
이번 여행에 차를 빌린 이유는 이베리아반도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면 들러보겠다는 목적이었는데... 이렇게 바로 그라나다로 갈 것이었다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현빈이 탔던 기차를 탈 걸 그랬다. 하지만, 후회해도 늦은 것. 어쩔 수 없이 방향을 그라나다로 옮기고 다시 운전을 이어간다.
스페인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시작은 단조로웠다. 나지막한 둔덕에는 줄을 맞춰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올리브 나무가 줄을 맞춰 커가고 있었다. 높은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 것은 그라나다에 가까워지면서였다.
갑자기 눈앞에 절벽처럼 산들이 나타났고, 조금 더 멀리로는 머리에 아직 흰 눈을이고 있는 시에라 네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남부 스페인이라면 한낮의 태양이 40도에 가깝게 뜨거운 곳일 텐데, 만년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산맥이라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근처의 공용 주차장을 찾아봐. 우리 숙소에는 따로 주차장이 없어."
그라나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체크인을 하고 주차장이 없는지 물었더니 근처의 공용 주차장을 찾아보라고 한다. 분명히 주차 가능한 숙소를 예약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오늘은 정말 실수가 많다.
게다가, 그라나다 중심부로는 거주자만 우선적으로 차를 갖고 다닐 수 있다면서, 가능하면 차를 그대로 주차장에 세워두는 게 좋다는 주인장의 조언이다. 이럴 거면 정말 차를 괜히 빌렸다는 후회가, 이로써 확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