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닻깡깡이 마을 곳곳에는 선박 부속품인 닻과 그것을 활용한 예술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박미혜
이들은 1937년 영도에서 시작된 철강선 건조와 수리에 처음 동원되었다. '깡깡이'라는 말은 선박을 수리할 때 도장 전에 외판에 낀 녹을 벗겨내기 위해 망치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말이다. 그렇게 '깡깡이 아줌마'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전성기 때만 해도 대평동은 약 300명이 거주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마을이었는데 80년대 후반부터 대형선박의 수리 방법이 바뀌면서 일감을 잃은 주민들은 생업을 잇기 위해 자갈치 시장 등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지금의 대평동은 오래전 대풍포 마을로 불리던 곳이다. 대평도 일대는 갑정(岬町)이라 하고 갑(岬)은 "산허리 또는 바다로 뾰족하게 내민 땅"이라는 뜻이다. 매축되기 전 지역적 특색을 따른 것으로 대풍포(待風浦)는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다.
즉 조선통신사 시절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고, 또 바람이 기운차게 일어나는 의미로 풍발포(風發浦)라 했다고 한다. 1887년 다나까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일본 조선업체들이 대풍포에 매립된 전용선착장을 요구하자 조선 정부가 이를 허락하고 1916년 -1926년 현재 조선공사와 영도대교 사이를 오오자와는 4200평을 매립하자 "갑정"이라 하고, 영도 대풍포 매축지비가 세워졌다. 해방 이후 1947년 동명정리 때 파도와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풍(風)을 평(平)으로 바뀌어 오늘날 대평동(大平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깡깡이마을과 대평동일대는 2015년 부산시 문화 예술형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마을 전체가 역사 기록물과 조화를 이루는 관광지로 탈바꿈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을 알 수있는 깡깡이 마을 박물관과 마을 공작소, 선박체험관 등을 만들어 놓아 타지역과 외국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 곳곳을 다녀보면 아직도 그 흔적들을 알 수 있는 집과 골목들, 그리고 선박의 부속물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