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권문석 추모제가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중구 스페이스 노아에서 열렸다.
권문석 추모사업회
링컨 대통령을 노예 해방의 아버지라 부른다. 하지만 사실 링컨은 흑인 노예들의 해방에는 동의했지만,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한참 후 마틴 루터 킹이 흑백 차별 철폐를 주장했으며, 유색인종 인권 향상을 위해 애쓰다가 총탄에 쓰러졌다.
우리 국민들은 청년 노동자 전태일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권문석은 잘 알지 못한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했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던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알바연대를 출범시키고, 노동자들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였고, '기본소득 전면 도입'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나이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을 불살랐다면, 권문석은 2013년 6월 1일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전면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35세의 나이에 급성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문사 문선공이었던 아버지와 대학가에서 하숙을 치며 생계를 이어갔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권문석은 1996년 성균관대학에 입학, 1999년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했다. 졸업 후 2009년에는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2013년 알바연대 대변인 등 사회운동을 통해 늘 노동자와 함께했다. 특히 2013년 알바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시급 4,860원의 2배가 넘는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담대한 구호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