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촛불을 켜다.
클레어함
그들은 유태인 중학생들과 교사, 랍비들이었다. 일요일에 예배를 보는 개신교와 달리, 토요일이 주일인 그들은 유태인 회당(시나고그) 참배 후 들른 듯했다.
랍비는 경건한 모습으로 추모 기도회를 주재했다. 교사는 "우리 유태인은 꽃을 바치지 않고 촛불과 돌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나이로 중학생인 이들 학생들은 내가 현지 교민인지, 아니라면 무슨 일로 부다페스트를 찾았는지 질문을 퍼부었다.
나이 지긋한 랍비는 우두커니 서서 강바닥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헝가리 유태인에게 다뉴브강은 단지 '깊고 푸른 다뉴브강'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부다페스트는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자, 유럽에서 제일 큰 유태인 회당인 도하니 거리 교회(Dohány Street synagogue), 별도의 유태인지구가 있을 정도로 유태계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런 헝가리에서 2차 세계대전으로 대략 육십만 명의 유태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헝가리는 당시 나치 독일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전쟁 초기 몇 년간 대부분 유태인들이 보호됐다. 하지만 전쟁 말기인 1944년 독일의 헝가리 점령 후, 지방에 거주하던 유태인과 집시 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당시 정세에 밝았던 주지사 미클로스 호시 덕분에 보호되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에 동조한 헝가리 극단주의자단체 애로우크로스(Arrow-Cross)는 1944년 10월, 권력을 찬탈한 후 시내 유태인 게토에 격리됐던 유태인 수천명을 무참히 총살했다. 애로우크로스는 유태인들을 다뉴브강에 모아놓고 신발을 벗게 한 후 물에 밀어넣어 죽였다. 1945년 2월까지, 총 4개월에 걸친 대학살의 희생자는 오천 내지 팔천 명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난 2005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영화감독 캔 토게이와 조각가 귤라 파우에르의 협업으로 조형물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태어났다. 바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마가렛트 다리에서 불과 1킬로미터 지점, 그곳에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