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뽁지 굴 내부동굴 끝에서 입구 쪽으로 바라보는 광경은 촬영하는 동안 정막감이 감돌았다.
진성영
두어 발짝 내 딛는 순간 무엇인가 발에 걸린 게 있었다. 타다 남은 오래 된 횃불이었다. 동굴 안내를 맡아준 김씨는 "그 옛날 기름이 귀한 시절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이곳에 청년들이 관박쥐를 잡아 기름 대용(代用)으로 썼다"며 "관박쥐는 온몸이 기름덩어리라 수십 마리만 잡아도 잔칫날 기름 걱정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라고 했다.
또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뽁지 굴로 숨어 들어와 징용을 피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난 후, 도서지역을 돌며 양민들을 학살할 때도 이 굴은 섬 사람들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관박쥐의 서식지이자, 과거 누란의 위기가 터졌을 때마다 피신처 역할을 톡톡히 했던 뽁지 굴은 대마도 섬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지켜 줬던 구세주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