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까대기> 한 장면.
보리
물론 우리는 모두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나가기 위해 노동력을 팔고 대가를 얻는다. 엄밀히 말하면, 무슨 일이든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작가가 알바로 까대기를 처음 하게 된 이유도 비교적 시급이 높아서였다.
정교하게 조직된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의 그물을 짜는 원동력이 어디까지나 '돈'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열악한 노동 현실도 다 자기 선택이고 그걸 감당하는 것도 자기 몫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극한 노동을 감당하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비록 우리가 그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 살아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있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택배 현장에서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이 만화 속에만 그려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직원들에게 컵라면을 사는 지점장과 알바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믹스커피를 사준 대리님을 우리도 만날 수 있고, 파손된 과일이나 야채를 자기 돈으로 물어줘야 하는 상황인데도 동료들과 나누고 베풀기 좋아하는 택배 기사가 바로 우리 집에 오신 그 기사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 목숨 같은 알바지만 부당함에 항의하는 용기와 해고당하는 동료의 편에 함께 설 수 있는 의리가 우리에게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으로 살아있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 내 돈 내고 받는 정당한 서비스라 해도, 택배 기사님들께 고맙다. 그게 당신들의 '일'이 아니냐는 말이 맞다 할지라도, 모든 노동자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부당하고 억울한 노동 현실을 알면서도 그저 아픈 마음 아프도록 놔두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이종철 (지은이),
보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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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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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알바 '까대기', 왜 이렇게 불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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