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화봉 표지석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제2연화봉 대피소까지 4.5km로 희뿌연 시멘트 길이 지루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런지 우리는 3시간 반이 걸려 대피소에 도착했다.
최정선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걷는 죽령 탐방로는 연화봉까지 7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소백산 철쭉산행 계획은 소백산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연화봉을 정복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했다. 기운이 소진되지 않은 한 비로봉(11.3km)까지 간다는 비밀 계획도 포함됐다. 이런 내심을 동행인에게 숨겼다. 말하면 못갈 이유를 열 가지나 나열할 게 뻔해서다.
소백산 산행을 위해 제2연화봉 대피소를 예약했다. 토요일은 예약대기 상태라 비상시를 대비해 금요일로 예약했다. 금요일은 여유있게 대피소 투숙이 가능해 동행인이 반차를 내고 갈 예정이었다. 소백산이 우리의 산행을 허락하듯 토요일 대피소가 예약이 됐다는 문자가 왔다. 급히 금요일 예약을 취소하고 일박을 위해 꼼꼼히 챙겼다.
덕유산 대피소에서 일박할 때 다들 고기를 굽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고기를 먹어볼 요량으로 하루 전날 고기를 필두로 먹거리를 잔뜩 구매했다. 드디어 5월 25일, 나는 카메라 가방, 동행인은 음식이 든 백팩을 메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도중 만난 작은 쉼터인 이야기 쉼터, 잣나무 쉼터, 혜성 쉼터에서 잠시 쉬어갔다. 걷는 내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감을 더한다.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다. 붉은병꽃나무의 미소가 힘이 된다. 바람고개 전망대에서 꽤 긴 시간 숨을 돌렸다. 이곳에 만난 두 명의 처자에게 철쭉 개화 상태를 물었다. 꽃을 보지 못했다는 답변에 실망감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했다. 걷는 것보다 숨 쉬는 것이 힘들다. 최근 기관지를 다쳐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옆에서 다두여 주는 동행인이 있어 죽령 고갯길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야자매트가 깔려 쉽게 걸었다.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제2연화봉 대피소까지 4.5km로 희뿌연 시멘트 길이 지루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런지 우리는 3시간 반이 걸려 대피소에 도착했다.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동행인이 '목적지를 보지 말고 땅을 보라'고 한다. 그래야 힘들지 않단다. 목적지를 보면 다리에 힘이 빠져 걷는 게 더 힘들어지는 심리 패닉상태가 된다고 귀띔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