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서 바라본 해안과 절벽. 오키나와전쟁이 끝날 무렵 저곳에서 수많은 오키나와인이 몸을 던져야 했다.
신재욱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은 오키나와전쟁부터 시작해 미군점령기와 일본 반환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전쟁은 1945년 일본군이 본토와 천황 방어의 시간을 벌기 위해 벌어진 전쟁으로 민간인 약 12만여 명을 포함해 20만여 명이 사망한 전쟁이다. 당시 일본군은 오키나와인에게 미군에게 잡힐 바에는 차라리 죽으라고 교육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불구가 되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독약과 수류탄, 다시 말해 그냥 죽거나 자폭하라는 단 두 개의 선택지만을 주었다.
전시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이 구술한 전쟁에 대한 증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영상자료와 기록물로 전시되어 있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논문 <일본 군국주의와 탈맥락화된 평화 사이에서>에서 "끈기 있게 오키나와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이 증언들이야말로 바로 오키나와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적인 방식은 전쟁을 낭만화하지도, 평화를 낭만화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마주치는 여러 풍경들 속에서 오키나와적인 방식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다음 행선지를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에는 어김없이 미군기지를 지나쳤다. 주일미군기지의 4분의 3 이상은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키나와의 건물들과 마치 너른 초원처럼 펼쳐져 있는 미군기지 내 잔디밭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보트를 타고 둘러 본 헤노코 기지 매립 예정지인 오무라 만에는 삼천 년의 시간 동안 형성된 푸른 산호초 군락이 있었지만, 그곳을 매립하려는 공사 현장도 함께 있었다. 강제적 집단자살의 현장인 치비치리가마라는 석회동굴에는 당시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의 유골과 함께 어느 청소년들이 침입해 부숴버렸다는 유품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쟁과 군사화를 직시함으로써만 평화는 말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