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의 정석> 87쪽에 실린 '메인 책장'의 모습
박효정
저자가 추천하는 책장 구성은 이렇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첫째 단에는 과학 책, 둘째 단에는 역사 책, 셋째 단에는 경제 관련 책, 넷째 단에는 무거운 책을 꽂는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부터 첫째 단은 '특별 전시' 테마로 꾸미고, 둘째 단에는 사건과 사회 관련 책, 셋째 단에는 문화, 예술 관련 책, 넷째 단에는 앞으로 처분할 책을 꽂는다. '특별 전시'칸은 그때그때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을 장르 불문하고 모아 전시하는 곳이다. 관심사가 변함에 따라 당연히 이 '특별 전시'의 테마도 바뀐다.
위에서 설명한 책장이 '메인 책장'이라면 이 '메인 책장'에 들어가기 전, 새로 산 책들은 '신선한 책장'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정리해둔다. 책장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책장은 필요치 않고 집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에 쌓아두면 된다. 밖에 나갈 때에도 이 '신선한 책장'에서 적당해 보이는 한 권을 갖고 나가 틈틈이 읽으면 좋다. 그러니까 '신선한 책장'은 '메인 책장'으로 가는 선발 장소이다. 여기서 '메인 책장'으로 갈지, 처분할 책이 될지 그 운명이 갈린다.
책장은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책을 버리기는 어렵다. 특히 이 <메인 책장>에 있는 책은 <신선한 책장>에서 선발된 책이기 때문에 버리기가 더 어렵다. 조금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 싶다. 이럴 때 왼쪽 제일 아래에 있는 '앞으로 처분할 책'칸이 활약한다. 먼저 <메인 책장>에 넣지 않기로 한 책은 일단 그 칸에 둔다. 이 칸은 수납 효율을 최우선으로 한다. 위에까지 쌓아서 꽉꽉 채워도 좋다. 칸이 가득 차면 모인 책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여기에 모인 책은 한 번은 <메인 책장>에 있던 책인 만큼 재미있고 유용하다. 다만 더 재미있고 유용한 책이 등장했기 때문에 자리를 잃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패자부활도 가능하다. 내 경우 30퍼센트 정도는 부활한다. 이 칸에 넣으며 다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버리기로 결정한 책은 <신선한 책장>에는 들어갔지만 <메인 책장>에는 다다르지 못한 책과 마찬가지로 처분한다. (118쪽)
저자의 책장에 대한 철학은 대단히 확고하다. 저자는 책장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에게 책장은 '뇌를 스쳐 간 정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두는 곳'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필요할 때 제까닥 찾아낼 수 있는 책장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마디로 책장은 나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조하는 보조 장치가 되어야 하고, 지식의 백업 장치여야 한다.
내 책장은 어떤가? 지식의 백업 장치라기보다는 추억의 앨범이고, 상당 부분 나의 지적 허영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이 3:7 정도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인용해 변명처럼 내뱉곤 한다. "아! 이 책들이요? 다음 주에 읽을 책들입니다. 아니, 책장에 이미 읽은 책을 꽂아놓는 사람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