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걸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이다. 현수막에는 "서울대 5명!! 일반고 전남최다 합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중한
그렇게 서울로 떠난 지방의 인재들은 선거에 출마하거나 은퇴 후가 아니면 결코 고향을 향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명문대에 합격이라도 하면 교문과 마을 어귀에는 학교와 고향을 빛낸 얼굴이라며 경축 현수막을 내걸린다. 그러나 그들은 현수막이 걸리는 순간부터 이미 고향을 떠난 '서울 사람'이다. '과잠을 입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수많은 지방의 인문계고등학교 아이들은 '잠재적 서울시민'이다.
학벌주의의 폐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교사가 진로탐색활동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미래세대 아이들을 학벌구조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모습 같아 참담하다. 학생 수가 크게 줄었어도 대학입시 경쟁이 여전히 치열한 데에는 교사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대학 탐방은 지방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자신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는 자해 행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등학교 교사가 중학교 교사나 초등학교 교사를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지도하는 동등한 교육자로 대하듯 대학교수 역시 다를 바 없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더 큰 배움을 위해 진학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소임일 뿐이다. 그런데 학벌주의에 경도된 고등학교 교사들은 명문대를 마치 신전인 양 떠받들며 교수들에게 아이들을 받아달라고 읍소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의 입맛에 맞게 짜이게 된다. 거칠게 말해 서울대에서 필요하다면 없던 과목도 개설되고, 수능과목이 아니면 교육과정에 엄연히 등재된 과목도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다. 창의적 인재를 육성한다며 문·이과를 통합하면 뭐하나. 대부분 학교가 수능 응시 과목별로 학급을 편성하여 버젓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인 대학의 간택을 받기 위해 교육과정과 지침조차 무시하고 온갖 편법과 불법이 판치는 곳이라면 더는 학교라 부를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다고 한들 그들이 온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리 만무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걸 몸으로 터득한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멀쩡할 리 없지 않은가.
대학 탐방 프로그램이 지닌 더욱 큰 문제는 명백한 특혜라는 점이다. '될성부른 나무'만 골라 가는 것도 그렇지만, 상당수의 학교가 탐방 비용을 학교발전기금 등에서 지원하고 있다. 학교 측에선 연간 학사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데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자문을 거쳐서 규정상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적을 기준으로 소수만 뽑아 혜택을 몰아주는 행태를 두고 규정을 운운하는 건 뻔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거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따로 뽑아 '특별반'을 별도로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냉난방 시설부터 최신 책걸상까지 납부금은 같아도 성적에 따라 처우가 달랐다.
당시 학생회에서 이를 문제 삼자 '특별반' 운영을 찬성하던 한 교사는 "민주주의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적을 기준 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한 아이의 질문에 그는 대충 얼버무린 채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그 어떤 것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학생과 학습 동기 부여를 위해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교사와의 언쟁이었지만, 당시 아이들의 주장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학교,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오랫동안 특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기가 받은 대우를 특혜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특혜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고, 외려 특혜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발끈하기 일쑤다.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공부를 잘해서 특혜를 누리는 게 잘못된 건가요? 아니꼬우면 공부 잘하면 될 것 아니겠어요.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전해주세요."
얼마 전 한 아이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수업시간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독식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이렇게 반문했다. 어차피 성적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상금을 준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현실은 일찌감치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고등학교 땐 산출 등급으로 구분 짓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명문대와 지잡대로 나누고, 졸업 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아이들 스스로 갈라치는 현실 앞에 교사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누구 말마따나 생각하는 대로 사는 교사는 보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교사들만 넘쳐난다.
인문계고등학교의 대학 탐방 프로그램은 '남들 다 하니 따라 하는' 관행이 되어 소수 아이의 특권 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소수의 특권 의식과 다수의 무력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시대의 화두인 '적폐 청산' 움직임에 학교라고 예외일 순 없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라면 당장 폐지되어야 옳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0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서울대 '간택받으려고' 이렇게까지... 고등학교서 벌어진 일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