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 하나도 나눠 먹으며 어르신도 아이들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모두 신나는 주민축제로 자리매김한 산곡2동 소소한 음악축제. 녹색야광 조끼 차림의 주민자치위원이 객석을 돌며 뻥튀기를 나눠주고 있다.
이상구
무대 뒤 배경막에는 '산곡2동 소소한 음악회'라고 씌어 있었다. 얼핏 보면 그저 흔한 동네 축제다. 근데 축제의 콘텐츠는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내가 갔던 그날은 밴드 데이였다. 밸리 댄스 공연으로 포문을 열고 두 팀의 밴드가 나와 헤비메탈과 로큰롤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축제는 모두 3일 동안 진행되는데, 이번 축제는 요들(알핀로제 어린이 요들단), 헤비메탈(미드래그), 로큰롤(정유천 밴드), 포크(경인고속도로), 전통풍물놀이(잔치마당 연희단), 클래식(제니 유) 등이 출연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음악장르가 망라된 셈이다.
제목은 그냥 제목일 뿐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문득 오랜 옛날 기획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무리 무명일지라도 저 정도 내공의 연주자들 불러오려면 적지 않은 출연료를 지급해야 했으리라. 눈대중으로 대충 행사 전체의 '와꾸'를 뽑아 보았다. 예산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다. 누가 판을 벌인 건지, 돈은 누가 대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 주변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뛰어다니는 스태프 한 분을 붙잡았다. 모두 초록색 야광조끼를 입고 있어 찾기도 쉬웠다. 자신을 그냥 평범한 자원봉사자라 밝힌 그 분은 이 행사가 산곡2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유준)에서 1부터 10까지 다 하는 행사라고 알려줬다.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의 소통에 기여하고 동네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그 주민자치위원회? 그야말로 자치적으로 자원봉사 나선 분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기본질서를 계도하고 청소년을 선도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는 그 주민자치위원회? 전국 어느 동네에나 다 있는 주민자치위원회? 그런 단체가 음악 축제를? 그것도 헤비메탈까지?
"처음에 우리가 주민과 지역을 위해 뭔가 해보자 했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중 제일 많은 의견이 음악 축제였죠."
유준 위원장은 처음 기획 당시를 회고했다. 그럼 어떤 음악을 할까를 의제로 걸었을 때도 백가쟁명 난상토론이 뒤따랐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게 '돈'이었다. 수준 높은 음악에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 놈의' 예산이 문제였다. 그래서 기획을 먼저 하지 않고 일단 섭외가능한 분들부터 먼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주변 인맥 모두 동원해 '재능기부' 형태로도 출연할 수 있는 분들부터 모셨다. '선 섭외, 후 기획'이라는 다소 변칙적 추진방식은 그렇게 도입되고 정착됐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기꺼이 나서주겠다는 분들이 넘쳐났다. 좋은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 하겠다는 아티스트들이 줄을 이었다. 흔쾌히 승낙하신 분들은 불문가지 일단 다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요들에서 헤비메탈에 이르는 버라이어티 한 출연진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였다.
유준 위원장은 변변한 출연료도 없는데 해마다 기꺼이 무대에 서는 고마운 분들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명백한 착취였다. 그렇지만 하는 쪽은 정말 미안하고 황송해하고 당하는 쪽은 오히려 기분 좋게 당해 주는 유쾌한 착취였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행사는 3일 동안 이어진다. 그런데 연달아 3일을 계속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1회, 금요일 이른 저녁에 딱 2시간 정도만 한다. 민원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라 특히 공원주변 주민들에게는 3일 내내 공연하면 당연히 민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주1회, 연3주 방식이었다.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민원은 걱정되는 양가적 상황을 절묘하게 버무린 것이다. 그래도 민원은 난다.
"단지 한 가운데라 소리가 빠져 나가지 못하니 특히 공원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 중에는 구청에 민원을 넣거나 항의하는 분들이 물론 있죠. 그래도 그런 분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주민들은 이해하고 좋아해 주세요."
이 동네 김종술 동장의 말이다. 그에게 이 공연을 위해 관에서는 뭘 도와주느냐 물었다.
"우리야 여기 공원 사용이나 공연허가 내주고, 현수막 검정 해 드리고, 많은 분들 올 수 있게 홍보도 하고 직원들이 나와 돕기도 하고 그 정도죠 뭐."
관의 예산지원은 한 푼도 안 받는다는 자치위원들의 증언은 과연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모든 걸 그들 스스로 '자치적'으로 해 내고 있었다. 참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소소한 음악축제에는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부대행사도 있다. 공연 전에 관내 소방서에서 나와 심폐소생술을 가르쳐 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여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는 터라, 꼭 알고 있어야 할 매우 유익한 정보다.
무료 짜장면 시식회도 열린다. 과거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하셨던 사장님께서 현장에서 직접 면을 삶고 짜장을 볶아 낸다. 그 맛이 또한 기막히다. 재료비는 관내 마을금고나 신협, 라이온스 클럽같이 재력 빵빵한 기관이나 단체가 후원해 준다. 하루 평균 700그릇이 나간단다. 이 또한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동네 주민들은 좋은 것 배워 머리 채우고, 맛난 짜장면으로 배 채우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음을 채우는 셈이다. 참 복받은 분들이구나 싶었다.
자발성, 다양성, 평등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산곡2동 소소한 음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