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5.3민주항쟁 자료 사진
인천 남구청
노회찬이 월급을 받아보기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이때 3년 동안이 전부였다.
감옥에 가고 노동운동을 하는 기간에는 '동가식 서가숙' 하느라 월급 없는 삶을 살았다. 인천에서 노동자 시절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인천의 '안전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노동 현장에서 겪은 각종 모순과 비리,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은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그를 '월급쟁이'로 묶어두지 않았다.
노동 현장에서 활동하는 '위장취업자'들과 수시로 만나 연대를 준비하고, 여러 차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거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때마다 사측의 신고로 시위대보다 많은 경찰이 달려오고, 그는 주모자로 찍혀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공장에 다닐 수 없었다. 노회찬은 다시 생각한다. 기층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게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기로 작심한다.
이후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전두환 정권의 경찰은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는 수배자를 검거하면 많은 상금과 특진이 보장 되어서 혈안이 되어 뒤를 쫓았다. 마치 일제강점기 왜경과 밀정들의 행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광주 학살을 자행하면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의 폭압통치는 1985년 2월 12일 실시한 제12대 총선을 계기로 점차 민주세력에 의해 밀리기 시작했다. 야당ㆍ학생ㆍ노동자ㆍ민주인사들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각급 민간단체가 연대하면서 정권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