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 질문 듣는 박근혜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이희훈
- 당시 기무사 문건에는 '반정부 성향 유가족 대표단 재구성 유도'라는 대목도 나온다.
"기무사의 세월호 가족 민간인 사찰 문건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데, 그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 참사 이전 모습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면 아이들을 구하고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진상규명하겠다는 말 자체가 처음부터 거짓말이라는 것이고, 빨리 가족 흩어버리고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참사 이후 진도에 있을 때나 청와대로 행진할 때, KBS 갔을 때 대외적으로 드러난 걸 보고 판단했다면 참사 직후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에 요구한 걸 그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호소든 읍소든 청와대를 향해 손짓한 것 자체를 불경하게 봤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참사 이전이든 이후든 결국 피해자에게 색깔을 덧씌워가면서까지 (사건 수사를) 끝내버리려고 한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밖으로는 진상규명하겠다고 하고 정보기관이 청와대에 계엄령 선포 조기 검토를 보고했다는 건, 조금 더 가면 숨겨야 할 어떤 중대한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 그렇다 해도 당시 상황에서 계엄령까지 검토한 건 지나치지 않나.
"그 기무사 문건에는 해외 사례와 함께 광우병 사태, 효순 미선(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여중생) 사건 등이 사례로 들어가 있다. 왜 그런 사례를 분석하고 세월호 참사에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진도 방문하고 체육관 방문하고 세월호 침몰 현장 갈 때 박근혜 지지율은 60%를 넘었다. (세월호 가족에게) 우호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지지율이 올랐는데, (기무사에서) 지지율 까먹는 작전과 행위를 했다. 보통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권에 부담이 돼 정권 재창출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막으려 했고 가족을 사찰했다고 생각하는데, 4~5월에 제대로 대응하는 척하면서 지지율이 올랐다.
정권재창출이 목적이라면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지지율이) 더 오를 텐데,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 결국 탄핵까지 당했다. 그런 위험 부담이 있더라고 막고 흩어놓고 갈라놓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알려지면 안 되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그걸 지키려고 정보기관에서 나선 게 아닐까?"
이처럼 기무사 문건은 여러 가지 물음표를 던진다. 실제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해 '음모론'까지 일었다. 당시 리얼미터 조사 결과 세월호 참사 전날인 2014년 4월 15일 박근혜 국정수행지지도는 61%였지만, 참사 다음날인 17일 66%, 18일 71%로, 참사 이틀 만에 70%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했던 시기였다. 다만 4월 21일 이후 지지율은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24일엔 54%까지 떨어졌다.
-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이 세월호 참사 전면재수사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세월호 DVR(디지털영상저장장치) 조작 문제도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CCTV 확인 중요성 얘기가 나오다 2~3일 만에 사라졌다. DVR 의혹의 핵심은 지난 2014년 6월 22일 회수한 게 아니라 그 전에 회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회수했다면 참사 직후 회수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별게 없었으면 공개했을 텐데, 공개하면 안 되는 이유가 담겨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DVR을 실제 언제 회수했는지, 사라진 영상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규명하면 전면재수사를 안할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을까? DVR도 중요한 재수사 단초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