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암 이관술 선생의 투옥시 신상카드
김종훈 의원실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사회주의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 당하고 가족들까지 고통 받았던 울산 출신 학암 이관술(1905-1950) 선생의 재조명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학암 선생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을 통해 유공자 서훈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약산 김원봉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유공자 서훈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이들의 활동이 더 주목된다.
앞서 이관술 선생 유족은 지난 2012년 "학암 선생이 국가 공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2015년 3월 27일 대법원은 "국가가 유가족들에게 그동안 입은 피해를 배상을 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 판결에도 이관술에 덧씌워진 '빨갱이' 프레임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이에 지난 4월,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자, 이관술의 후손은 뜻을 모아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재조명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울산 동구 지역구인 김종훈 의원(민중당)이 주관한 '항일운동가 이관술 국회 세미나'가 22일 오전 10시30분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렸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후원했다.
해방 후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로 꼽힌 이관술
1902년 울산 입암에서 출생한 이관술은 서울 중동고와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동덕여고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학암 이관술은 일제강점기 1930~40년대 국내에서 항일운동에 앞장서다 수배, 체포를 거듭하며 투옥돼 모진 고문을 겪었다.
해방 직후 잡지 <선구>의 최초 정치여론조사(1945.12)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가장 양심적이고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 5위에 선정될 만큼 현대사 속 중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해방 직후인 1945년 발생한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일제가 사용하다가 남겨둔 지폐원판을 이용해 거액의 위조지폐를 발행한 사건)으로 1946년 체포돼 주범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대전형무소에 투옥됐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군이 법 절차를 위반하며 처형했다.
유가족과 일부 학자들은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을 미군정이 주도해 조작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학암 이관술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4명의 딸을, 두 번째 부인과는 1명의 딸을 두었다. 하지만 장녀의 남편은 장인이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에 가입해 처형당했다. 둘째 딸과 둘째 부인 및 그 딸은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다.
현재 유일한 유족은 막내딸(85)로, 지난 2012년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명예를 되찾았다. 현재 시민단체 등과 함께 아버지 이관술 재조명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비운의 독립운동가 이관술... 명예회복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