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앞 탈의실
임현철
협력업체 노동자의 샤워실과 탈의실입니다. 샤워장 바닥 타일은 깨졌고, 샤워기는 달랑 세 개에 멀쩡한 걸이가 거의 없으며, 배관도 노출돼 썰렁하고 지저분합니다. 탈의실 가구는 공동 옷장으로, 오래된 철제 제품입니다. 책상 위에는 헤어드라이어 하나가 달랑 놓였습니다.
샤워실과 탈의실 외에도 화장실, 사무실 등 '갑과 을'의 현실 차이는 현저했습니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편의시설을 비교하면 호텔과 여인숙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을'은 '갑'의 총알받이가 아닙니다. 언제나 필요하면 쓸 수 있는 '하인'이 아닙니다. 협력업체 '을'은 원청회사 '갑'을 지탱해 주는 근간입니다. 즉 을은 갑의 이익을 보존해주는 최후의 버팀목입니다.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다
제가 노동 현장에서 본 '을'은 처우뿐 아니라 근무환경, 편의시설 등이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대체 갑은 을을 사람으로 생각하긴 할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원청 회사와 협력업체 소속 여부를 떠나 공동 운명체입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면 안전사고 등 부수적인 효과까지 동반됩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안 마련이 절실했습니다.
바람이 통했을까요. 갑과 을의 차별을 건의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마침, 그룹 본사 감사팀이 방문했습니다. 현장에서 협력업체 편의시설 개선 등을 건의했습니다.
"빨리 개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긍정적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공장장에게도 탈의실 수리를 요청했습니다. 기다려달라는 의지 표명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통했을까요. 그 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편의시설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일을 그만뒀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곳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샤워실과 탈의실의 수리돼 말끔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을 '갑과 을'의 다른 차이와 차별들도 더 많이 개선됐길 희망해봅니다. 더 나아가 경쟁보다 협력을, 대립보다 조화를 살피는 기업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를 꿈꿔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타인을 위하는 게 곧 자신을 위한 길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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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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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는 탈의실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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