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막 끝낸 논의 풍경입니다. 도초도엔 논이 많았어요. 넓은 수로에는 물도 풍부했구요. 섬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이 모든 환경을 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니, 놀라웠답니다.
이창희
선착장에서 학교까지 이동하는 길은 길었고, 넓은 수로를 가득 채운 물과 모내기를 막 끝낸 반듯한 논들은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했다. 섬은 예상보다 컸고 여느 농촌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어 의아했다. 분명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말이다.
"섬이 넓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도초도는 주변의 수많은 섬들을 이어서 만든 거예요.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간척을 한 거죠, 사람의 힘으로."
놀라웠다. 500년 전의 조선 땅에 살았던 선대를 상상한다. 섬의 사람들은 거친 바다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보호해야만 했다. 홍도, 흑산도는 당시 가장 악명 높은 귀양지였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앙의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돕기로 결정한다. 조수 간만이 심한 서해의 바다라면 가까운 곳의 섬을 연결하여 좀 더 안전한 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힘을 모아 바다를 메우고, 수로를 만들어 농지를 늘려간다.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넓어질수록 바다의 거친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땅에서 키워낸 작물과 서해의 바다가 허락한 수확물들로 한결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서로를 돌보았기에 '삶'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성공의 경험이, 그들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을 테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원망이 없어요."
섬마을 인생학교를 왜 굳이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도초도에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신안 군수의 답이었다고 한다. 혹독한 자연환경은 섬의 주민들을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난으로 밀어 넣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단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원망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었고, 상황을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어 내야 하는 동료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긍정', 인생학교가 이곳에 마련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