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등장하는 ‘한성병원’"여기는 조선서 제일로 신식 의원이여"라는 대사로 등장하는(11화) 한성병원은 유진(이병헌 분)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선교사 요셉의 시신이 옮겨지는 곳으로(14화), 총에 맞은 구동매(유연석 분)가 마취하지 않은 채로 일본인 의사에게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곳으로(18화) 등장한다. 친일파 리노이에(이완익, 김의성 분)의 범인으로 일본인 의사 마츠야마가 몰리는데, 그는 한성병원 의사다(20화). 글로리호텔 폭파 후 일본군이 후송되는 곳, 유진이 애신(김태리 분)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구하러 가는 곳도(23화) 모두 한성병원이다.
스튜디오 드래곤
'경성부립도서관'이 위치했던 곳은 메이지쵸(明治町) 2정목 25번지(지금의 명동 2가 25번지)다. 경성부는 이 자리에 있던 옛 한성병원 건물을 매입해서 1922년 10월 1일 도서관을 개관했다.
일본인의 조선 거주가 시작되면서 일본 정부는 군의(軍醫)가 진료하는 관립병원을 개항장에 설치했다. 1883년 한성부에 공사관 의원을 설치해서 운영하다가 폐지한 후 1895년 문을 연 병원이 바로 '한성병원'이다.
한성병원은 일본 거류민이 직접 운영하는 공립병원으로 출발했다가 경영상 어려움으로 1909년 개인병원으로 바뀌었다.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산과와 수술실, 병동을 갖춘 서양식 종합병원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함께 진료했다. 1901년 고종이 한성병원에 금일봉을 하사한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조선인 진료에도 나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03년 고종의 총애를 받은 내장원경 이용익이 입원했다가 폭발물 테러가 일어난 곳도 이곳 한성병원이다.
대한제국 시대 의병 이야기를 다루며 화제가 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는 배경의 하나로 '한성병원'이 등장한다. 한성병원은 일본인 의사가 서양 의술을 펴는 곳으로 그려지는데, 드라마 배경이 된 이 시기 일본인이 한양에서 운영한 대표적인 서양식 병원이 바로 한성병원이다. 1908년 대한의원이 문을 열기 전까지 한성병원은 세브란스 병원과 함께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대식 병원이었다.
1909년 12월 22일 벨기에 황제 추도식 참석 후 경성 종현교회당(지금의 명동성당)을 나선 이완용은 비수를 휘두른 청년 이재명의 습격을 받고 쓰러졌다. 이완용은 다음 날인 23일 대한의원에서 3시간 동안 수술을 받지만, 습격 당일 응급 처치를 위해 이완용의 저동 자택으로 왕진을 간 의사는 한성병원 외과의사 가쿠다(鶴田)와 원장 안도(安藤)였다.
저격 장소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당시 한성병원은 설비와 체계를 제대로 갖춘, 흔치 않은 병원이었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1910년 8월 22일 이완용은 총리 대신 자격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통감과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1909년 한성병원-대한의원으로 이어진 의료 처치로 이완용이 회생하지 않았다면 '경술국치'라 일컬어지는 한일 강제병합은 달리 전개되지 않았을까.
메이지쵸는 혼마치(本町)와 함께 일본 거류민의 중심지였고 한성병원은 일본인 거류지의 대표적인 병원이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병원을 도서관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일본인이 이용하기 편리했을 것이다. 경성부립도서관의 입지만 봐도 이곳이 일본인을 위한 도서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경성부립도서관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1층에는 아동실(22평), 휴게실(3평), 사무실(3평)이, 2층에는 일반열람실(32평)과 서고(5평)가 자리했다. 메이지쵸, 지금의 명동 시절 경성부립도서관 이용 통계 중 흥미로운 부분은 남녀 이용자 비율이다. 1925년 10월 통계를 보면 경성부립도서관은 '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었다. 남성 이용자는 4768명이었고, 여성 이용자는 0.3% 수준인 16명뿐이었다.
명동에 5년 동안 머문 경성부립도서관은 1927년 5월 소공동 112-9번지로 이전한다.
'대관정'과 대한제국 밀사 헐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