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구정우 지음, 북스톤(2019)
송주연
'인권감수성'이란
저자는 인권과 인권이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인권감수성'이라고 강조한다. 인권감수성이란 '인권의 원리를 중심으로 생각과 태도, 말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 '왜 인권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토론을 요청하는 이성적 활동이지만, 동시에 적절한 감성적 반응을 요구하는 복합적 개념(p35)'이다.
'남의 처지와 아픔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고 감정이입하는 능력(p38)'인 '공감'은 인권감수성의 필수요소다. 저자는 공감할 수 있을 때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난민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권감수성은 정서적 개념인 '공감' 능력 하나로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에 이성과 의지적 태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인권 감수성은 오히려 자신의 윤리적, 지적 판단이 오류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판단근거를 점검하고 오류 가능성을 성찰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p40)
책에 소개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지난 1월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대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로 용어를 통일해 사용하고자 한다고 밝혔으나 본 글에서는 책에 나온 표기를 따른다 - 편집자말) 정춘국씨의 말은 '인권감수성'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20대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정씨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를 마련하라는 헌재의 판결 이후, 한 변호사로부터 재심 권유를 받는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답한다.
"변호사님, 서산에 해가 집니다. 제게 제가 갈 길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처럼 그분들도 조국에 대한 열정이 있었겠지요. 사회를 지켜야 하는데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하면 '안되게 만들어!'하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이해 못할 건 아니잖아요." (p120)
'나를 해코지한 상대에게까지 공감할 수 있는 것, 상대의 입장에서 그가 한 행동의 맥락을 찾아보는 것(p120)'이 결국 인권감수성인 것이다.
인권감수성을 키우려면
그렇다면 인권감수성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공감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그가 한 행동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게 될까. 저자는 인권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것'이 먼저임을 이야기한다.
난민문제에 대해서 그는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정작 살펴보지(p72)"도 못하면서 여러 가지 논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또한, 평소 교도소 수감자들의 인권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쇼생크탈출>이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면 수감자들에게 공감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 역시 그는 "신뢰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이 커밍아웃을 할 때 더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다"며 "믿고 따르는 사람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될 때 부정적인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한결 커진다(p168)"고 강조한다. 즉, 더 많이 알수록, 가까이서 관찰하고 관심을 갖게 될수록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점검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이 거의 모든 악의 치료약을 찾아냈긴 했지만, 그중 최악에 대한 약은 찾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무관심이다 (헬렌 켈러, p203)'
저자가 책 속에 인용한 헬렌 켈러의 이 말은 어쩌면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핵심원리인지도 모르겠다. 무관심을 거두고 주변의 이웃과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알아나갈 때, 공감할 수 있으며 타인이 처한 맥락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권감수성으로 연결될 것이다.
인권감수성이 발휘될 때
지난 2016년에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집회에 참가했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쳤던 그 촛불집회는 23년 전 기억과는 너무나 달랐다. 집회참가자들은 거리의 상점과 행인들을 배려했고, 집회 후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되가져가 시민들의 불편을 줄였다.
시민들은 집회참가자들에게 응원을 보냈고, 거리의 상점에선 집회참가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경찰의 저지선은 안전선처럼 느껴졌고, 참가자들은 그 선을 존중했다. 23년 전 집회현장에서 충돌했던 시위대와 경찰, 거리 상인의 인권이 촛불집회에선 다함께 지켜지고 있었다.
'개별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인권의 권리가 반영되고 또 사람들이 이를 내면화하는가가 중요합니다' (p39)
2016년의 촛불행진이 더 감동적이었던 건, 저자가 책의 첫 장에 적었던 이 말처럼 인권감수성이 현장에서 발휘되었기 때문아니었을까. 인권감수성이 개개인의 일상에서 실천된다면, 저자의 표현처럼 '웃으며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 일단 이 책부터 읽어보자.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매우 잘 정리해 놓은 이 책을 통해 이웃과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인권감수성을 가꿔가는 첫 걸음 일테니 말이다.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 ‘나는 괜찮다’고 여겼던 당신을 위한 인권사회학
구정우 지음,
북스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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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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