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숙 인천복지재단 대표.
유성호
일곱살짜리 꼬마는 1971년 인천 도화동 철길 옆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떠밀려온 아버지가 마지막 재산을 다 털어서 운영하던 작은 신발공장은 망했다. 철거를 당하고, 만수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곳, 인천에서의 삶은 그렇게 48년이 흘렀다.
가난했던 철거민의 딸은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번듯한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했다. 서른이 넘은 어느날, 곰곰 생각해봤다. '왜, 내 가슴이 뛰지 않는 걸까'. 인디언의 충고가 생각났다. 내가 경주마처럼 달리는데 급급해서 미처 내 영혼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늦깎이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대학 강단에 섰다.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만들기 위한 사단법인 마중물을 만들어 사회참여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올해 2월 19일 출범한 인천시 출연기관인 인천복지재단의 초대 대표이사가 됐다.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였던 유해숙 대표는 늘상 '인천'과 '복지'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이상이 일상이 되는 상상의 광장'. 인천복지재단의 슬로건이다. 지난달 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유해숙 대표가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시민력'과 '복지기준선', '위험'과 '상상'이다. 이 단어들은 씨줄날줄 엮여있다. 복지기준선은 시민력(力)에 의해 만들어지고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복지에 대한 상상을 키우고 현실화 할 때 사회적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 대표의 눈에 비친 인천은 한국 사회의 압축판이다. 또한 먼저 온 한반도의 미래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남동구다. 이곳은 북한 이탈주민이 가장 많은 동네이자, 인천은 육지와 바다 모두 북한과 맞닿은 곳이다. 통일 이후 한반도 주민들의 삶이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삶과 직결된 복지 문제 또한 그러하다.
유 대표가 올해 논의의 큰 틀을 매듭짓겠다고 한 인천형 시민복지기준선은, 복지에 관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분야별 최저선과 적정선을 마련하는 '복지 설계도'다. 그는 복지기준선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위에서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토론과 협의를 통해 깨달으면서 만들어가는 '시민력'에 기초해야만 사상누각이 안된다는 것이다.
유 대표의 진단과 주장은 명료하다. 울리히 벡이 강조했듯이 현대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을 깔고 앉아있는 '위험사회'라는 진단이다. 그 위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에 공동체가 함께 힘을 합쳐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향은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연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문제이기에 사회적 '공감'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 유해숙 인천복지재단 대표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의 조건 시가 보장하겠다” 유해숙 인천복지재단 대표가 8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복지재단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향후 재단을 이끌어 갈 방향과 포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다음은 유해숙 인천복지재단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박남춘 인천시장과의 인연은.
"박남춘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가 인천 남동구였다. 나는 당시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만들기 위한 사단법인 '마중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마중물이 남동구에 있었다. 박 시장께서 저희 기관을 탐방하고 함께 토론한 적이 있다. 그때 2시간 넘게 토론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지역구 활동인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토론하고 고민하고 끝까지 참여했다. 그게 처음 인연이다.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적은 없고, 박 시장 당선 이후 인수위원으로는 참여했다."
- 일각에선 '낙하산 논란'도 있었는데, 박남춘 시장이 왜 유해숙 교수를 인천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임명했다고 보는가. 주어진 미션이 있나.
"박남춘 시장께서 이걸 해달라고 말씀한 적은 없다. '낙하산 논란'이 있을 때 박 시장께선 '유해숙 대표가 낙하산이라면, 여러분이 한 거다. 복지계에서 추천했고, 민주당에서도 추천했고, 여러분이 추천한 걸 시장인 내가 추인한 거다'라고 말했다.
인천복지재단은 전임인 유정복 시장 때 만들어졌다. 재단 이사회까지 꾸려졌다. 이후 인천시장이 바뀐 거다. 이것을 박남춘 시장이 계승한 거다. '시민 중심의, 시민이 주인되는, 시민이 참여하는' 복지로 이끌어달라는 당부는 했다. 이상이 일상이 되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 인천 복지의 방향과 체계를 잡는 역할을 제게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 인천복지재단은 1실, 2부, 3개팀으로 편제돼 있다고 들었다.
"(조직 편제가) 바뀌었다. 원래 1실은 조사연구실, 2부는 품질관리부, 기획행정부였다. 직원들과 토론해서 3실로 바꿨다. '품질관리부'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 인천복지재단은 지원하는 곳이다. 그래서 바꿨다. 품질관리부는 지역복지협력실로, 조사연구실은 정책실천연구실로 바꿨다. 그리고 기획행정실. 전체 인원이 20명이라 현재는 지역복지협력실만 지역공동체팀과 시민력증진팀으로 나눴다."
- 전임 유정복 시장 때도 인천시와 인천사회복지협의회가 '인천복지재단' 설립을 놓고 갈등을 빚은 걸로 알고 있다. 한정된 예산과 기능 중복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많이 노력하고 있다. 인천복지재단 대표를 맡고 난 뒤 첫 실천사업이 오픈 콘서트였다. '복지재단의 길을 현장에 묻는다'는 콘셉트였다. 이 토론회를 인천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사협회와 공동으로 주관했다. 인천복지재단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린 거다. 앞으로는 현장의 사회복지 동료와 공무원들이 함께 참여해 공공과 민간의 거버넌스로, 협치로 가겠다는 뜻이다.
인천복지재단의 일은 사회복지협의회나 사회복지사협회의 사업과 중복될 수밖에 없다. 같은 사회복지에서 딱 구분해서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업하면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인천복지재단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서 현장의 이런 우려는 심화되기도 하고 불식되기도 한다고 본다. 인천복지재단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면 현장에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