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DNA> 책표지.
바람의 아이들
<우리들의 DNA>(바람의 아이들 펴냄)는 단편집이다. '심연의 물고기, 하늘거린다', '꽃잎이 된 교복', '굽은 소나무' 등 모두 여섯 작품이 수록됐다. 재희가 주인공인 '일 달러, 움켜쥔 희망'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그 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절망'을 배경으로 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정리해고 2년 만에 노동자와 그 가족 20명이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2번째 자살 사망자와 30번째 사망자를 추모하던 기사도 생각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80%가 우울증이 심각'하다거나 '자살률이 3.7배 높다', '해고노동자 아내들 대부분 죽음을 생각했다'는 내용의 기사 등도 생각난다.
소설 속에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의 죽음이 나온다. 해고근로자인 그는 일자리를 찾아 이사를 했지만 블랙리스트에 걸려 변변한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일 때문에 이틀째 집에 돌아오지 못한 그날, 아이들의 엄마가 죽는다. 그런 엄마의 주검 옆에서 아이들은 이틀 밤을 잤다던가. 그것도 집안에 먹을 것이 전혀 없어 발견되었을 당시 몇 끼나 굶어 늘어진 채로.
같은 뉴스를 한 공간에서 함께 봐도 저마다의 처지나 시각 등에 따라 달리 받아들이거나 기억하게 된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농성 같은 노사 관련 뉴스를 보게 되면 그들의 가족들이 더 걱정되곤 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직장을 잃고 부재중인 가장 대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게로 훨씬 고단하게 살아내고 있을 그들의 아내들과, 불운한 부모의 사정을 헤아리며 수많은 바람과 꿈들을 스스로 꺾어야만 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럼에도 어찌 도움 되지 못하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아쉬워지곤 하는 그런…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일 달러, 움켜쥔 희망'은 아마도 해고노동자 가족이라면 누구나 겪을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노동자 가족의 불안한 삶과 비극에 깊이 공감하게 한다.
최저 임금 인상 문제를 놓고 시끌시끌하다. 몇 가지 까닭을 들어 기업들은 어렵다고 항변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임금이 더 올라가면 마치 나라 전체가 거덜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노동조합 결성을 금지하거나 정당한 노조 활동들을 죄악시하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마땅함에도 전혀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굽은 소나무」의 '마리'와 「DNA」의 '신이' 엄마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믿음, 대학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행복쯤은 내팽겨 쳐도 된다는 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피 흘리며 쓰러져 가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건네주는 '민혜'와 수행평가를 대신 해줬다고 고백하며 편법에 맞서는 아이들, 실수가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독여 주는 활동가 형 같은 분들 덕분에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삶의 DNA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짧은 이 여섯 편의 글이 공부를 왜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참 좋겠다. - '저자의 말'에서.
여섯 작품 모두 주인공이 중학생인 <우리들의 DNA>에는 이 소설 외에도 다른 학생에게 수행평가를 대신 시키는 교사인 아빠를 둔 아이( '심연의 물고기, 하늘거린다)', 오직 공부를 위해 혼자 나가 살겠다는 잘난 언니를 둔 동생인 나('굽은 소나무'), 아빠의 장례식 날에도 장사를 하겠다는 엄마가 싫지만 남들이 비난하자 엄마를 감싸는 아이('DNA')등, 현실성 강한 소설들이 실려 있다. 저마다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라 살갑게 와닿고, 깊이 공감하게 한다. 중학생 주인공들의 성장통, 그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DNA
양인자 지음,
바람의아이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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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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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부터 쌍용자동차 해고까지, 주인공은 모두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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