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 붙어 있는 세 개의 가격.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하나 가져오면 두 번째 가격에, 두 개를 가져오면 처음 가격에서 최소 절반 이상이 할인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조윤진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의 가치는 상품 자체의 효용(사용가치)이 아닌 거래 가격(시장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이든 '그래서 그게 얼마나 돈이 되는데'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상품의 고유한 가치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이 가게의 규칙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하려면 동등한 시장가치를 가져야 한다'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만족하면 그만'이다.
예컨대 좋은 바지를 할인 받아 사고자 한다면, 교환 물품이 공짜로 얻은 일회용 마스크든, 한 번밖에 입지 않은 가디건이든, 할인율은 다르지 않다. 이 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내겐 더 이상 필요(사용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내게 이제 필요한 물건을 싸게 샀다'에서 오는 사용자의 만족감에 있다.
물론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바지와 기껏해야 몇백 원에 팔 수 있을 일회용 마스크 간의 교환은 수지가 안 맞는 장사다. 이에 최씨는 "그래도 우리 가게가 잃는 것은 없어요, 판매한 상품 역시도 돈으로 산 게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인도 여행하다 그대로 정착… 벌써 11년 전
그렇다면 최씨는 왜 돌연 인도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11년 전, 최씨는 45일간의 인도 여행 후 이직하기로 한 직장이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는 돌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최씨는 "여행을 하다 보니 이곳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의 나를 떠올리며 내 모습에 거품이 씌워져 보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때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있을지 몰랐고 최소한의 계획도 없었지만,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맞더라도 최소한 스스로 덜 실망스러운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물론 힌디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 인도에 자리를 잡고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연 시비가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고, 1년여를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기도 했다.
인도 이곳저곳에서 장사하다 8년 전 처음 맥그로드 간즈에 왔을 땐 최씨가 대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독특하고 꾸준한 컨셉 탓일까, 이제 최씨의 더티 런더리는 여행자들뿐 아니라 의류 재사용 문화에 낯선 인도인들까지 찾아오는 곳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