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용균이다.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와 시민이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차 고 김용균 범국민 추모제에 참석해 비정규직 철폐, 위험의 외주화 금지,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유성호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한반도는 위기 상황이었다. 전쟁의 먹구름이 걷힐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 5.24 조치,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는 경색되기만 했다. 이뿐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간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민생은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FTA 날치기 강행, 4대강, 100조 부자 감세, 자원외교혈세낭비, 부정선거 대선개입,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사드와 위안부 야합,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강행, 개성공단 폐쇄와 대북전쟁 불사 정책, 역사교과서 국정화, 친재벌 정책, 노동개악, 묻지마 쌀개방, 심지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까지, 온갖 적폐를 쌓아 온 기간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있었던 민중총궐기는 이런 적폐에 맞선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백남기 농민. 그리고 다음해인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자 공안당국에서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병에 의해 돌아가셨다고 주장했다.
그를 빌미로 검찰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밝혀야 한다며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농민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때 농민들이 외쳤던 구호가 '내가 백남기다'였고, 국민들은 이에 호응해 '우리가 백남기다'를 외쳤다. 2016년 10월 24일 최순실 테블릿 피씨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며칠 후인 29일 최초의 박근혜 퇴진촛불을 밝혀졌을 때, 다수의 피켓은 '우리가 백남기다'였다.
이렇게 시작된 퇴진촛불은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까지 23차례 전국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촛불정부를 세울 수 있었고, 그 촛불 정부가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하겠다는' 남북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2019년 연말 김용균 청년 노동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참하게 쓰러져 갈 때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님이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칠 때 국민들은 모두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쳤고, 거대한 기업들의 반발에 번번히 좌절되었던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이 29년만에 전면 개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국민들은 모두 백남기가 되고, 김용균이 되었으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민생을 가로막는 세력에 맞서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했다.
1700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자 박근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었듯 한반도에서 냉전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맞서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다. 우리 모두가 분단선을 뛰어 넘어 평화와 번영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바로 '우리가 문익환이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말이다. 30년 전 문익환 목사님이 가신 길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