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평가해보건대 지난 2년 동안 마을교사로 '연극' 혹은 '뮤지컬'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예술'을 가르칠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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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미화원이 되었지?' 대답은 간단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다. 나는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언제나 따로 돈을 벌어야 했다. 다양한 일을 가리지 않고 했지만 주로 연극과 관련하여 대학생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두루두루 가르쳤다. 사실은 올해도 혁신교육지구의 마을교사로 초, 중학생 대상의 연극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 나의 생계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 수업시수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당 임금은 미화원의 세 배 정도 되지만 일 년 수입의 총액으로 따지면, 재작년 기준으로는 미화원의 1/5이고, 작년 기준으로는 1/10에도 못 미친다. 과거에 지방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도 한 달 수입은 많아야 80만 원이었다.
두 번째,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막연히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평가해보건대 지난 2년 동안 마을교사로 '연극' 혹은 '뮤지컬'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예술'을 가르칠 기회는 없었다.
예술은 크게 두 개의 줄기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실용적 목적 없는 순수한 유희적 본능이고, 또 하나는 삶과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성찰이다. 순수한 유희를 위해서는 무한한 여유와 자유가 필요하고 새로운 각도의 성찰을 위해서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 제한 없는 깊이와 넓이의 사유를 허용하는 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혹은 뮤지컬 수업은 그럴 듯하게 보일만한 공연을 아이들로 하여금 습득하게 만들어 무대 위에서 발표하도록 만드는 천박한 목적을 달성하기에 바쁘다.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잠시 멈출 여유는 없으며,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도 없다. 학교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 수업을 통해 자신감, 발표력, 표현력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능력들은 예술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그런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목적이 예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이제 생계를 위한 활동에 어설프게 예술이라는 명목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생계 활동과 예술 활동을 구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 벌기 위한 일에서도 보람과 의미를 찾고 싶었다. 면접관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듯이 청소에 대한 나의 가치관, 즉 '환경을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관리하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귀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그 정도의 양심은 지키고 그 정도의 보람은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 2회 청결의 이중성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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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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