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쇼인 신사 입구
임병식
지난주 일본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에 다녀왔다. 우리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물론 일본 열도 전역이 우리와 얽히고설켜 있다. 최남단 가고시마 치란(知覽)부터 최북단 홋카이도 비바이(美唄)까지 곳곳이 그렇다. 남쪽 치란에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기지가 있다. 그 유명한 자살 특공대가 주둔한 곳이다. 광기어린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우익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 발진한 전투기는 폭탄을 탑재한 채 미국 항공모함으로 돌진했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다. 조선인 자살 특공대 11명을 기린 위령비도 구석에 있다. 수년 전 방문 당시 조선인 자살 특공대를 마주하곤 착잡했다.
북쪽 홋카이도(北海島)에서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 2000여 명이 숨졌다. 전쟁 기간 동안 15만 명이 끌려왔다고 한다. 석탄 캐고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동원됐다. 비바이(美唄) 탄광은 조선인 수 백 명이 폭사한 현장이다. 2015년 유골 115구가 고국에 돌아왔다. KBS는 '70년만의 귀향'라는 프로그램에서 귀향 과정을 알렸다. 한일 민간단체가 주도해 18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삿포로 약왕사에도 유골 816기가 안치 돼 있다. 대한불교 관음종과 일본 조종동은 매년 위령제를 지낸다. 이렇듯 일본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한 많은 흔적은 차고 넘친다.
야마구치 방문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라는 책도 동기가 됐다. 야마구치는 일본을 해석하는 단초다. 근대화와 군국주의를 추동한 특별한 곳이다. 아베 정권도 연장선상에 있다. 아베 총리 지역구가 야마구치 시모노세키다. 시모노세키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하기(萩). 인구 4만 명에 불과한 작은 어촌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일병합을 주도한 인물이 무더기로 나왔다. 하기 출신 정치인과 군인들은 번갈아 가며 조선을 유린했다.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15년 동안이다. 초대 히로부미, 2대 아라스케, 3대 마사타케 통감과 초대 마사다케, 2대 요시미치 총독, 그리고 일본 육군의 교황으로 불리는 야마가카 아리토모까지 죄다 하기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