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이 무려 100년 이상된 등나무가와치 후지엔은 360도를 둘러봐도 여기도 저기도 ‘보라’ 세상이다. 수령이 무려 100년 이상된 등나무도 있다.
최정선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해마다 나가고 싶어 하신다. 계속된 해외여행에 브레이크를 걸면 못내 서운한 감정을 못 감추신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이번엔 둘이서 가까운 일본 여행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내가 첫째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챙겨주셨다. 방학 숙제까지 해주신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립심이 부족하고 혼자 무슨 일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보기로 결심한 거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코맹맹이 소리까지 섞어가며 애교를 부렸다. 사진 속 장소로 가보자고... 엄마는 한참 동안 팔을 끼고 사진을 보시더니 좋다신다. 그렇게 엄마와 둘이 떠난 여행은 장장 한 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쳤다. 둘 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므로 돌발 상황을 최소화해 보자는 궁여지책이다.
한 달을 준비한 엄마와의 여행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는 5월. 가까운 일본에 이색적인 꽃 세상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린다. 이즈음, 좋은 사람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 바로 엄마다. 드디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는 여행 첫날이 되었다. 일본으로 향하고자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공항으로 갔다.
2남 2녀를 둔 엄마는 첫째인 나보다 여동생인 막내를 더 미더워하신다. 이래저래 전화하거나 만만하게 불러내는 상의 대상이 막내다. 막내는 나보다 10년 먼저 결혼해 어른스럽다. 그런 점이 든든하셨는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상황이 질투가 느껴질 때가 있지만,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늘 막내가 눈에 밟혀서 그러시나보다라고 생각해 버렸다.
공항에 도착해 와이파이 도시락부터 발권까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평소 부산을 떨곤 했던 행동은 싹 사라져 버리고 차분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청객, 강박증은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들 것이다.
벌써 엄마 나이가 일흔이다. 언제 저렇게 늙으셨는지. 그래도 여전히 힘이 넘치신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두 사람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싶었다. 막내와는 자주 해외여행을 가신다. 물론 이런저런 상황이 받쳐줘 그렇겠지만.
나와는 꽤 깊은 마음의 골이 있다. 나는 마흔이 지나도록 혼자 살다 결혼했다. 사실 못 갈 줄 알았다.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진 상태였다. 나이가 드니 나도 모르게 사람을 만나면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하곤 했다. 독신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맞추기엔 모난 성격이 부각되곤 했다. 꼭 철옹성 같았다.
그런 나와 함께 살던 엄마는 딸을 그저 덜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쓴소리를 엄청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갈등도 심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자립심 강한 딸, 엄마를 지켜주는 어벤져스가 되고 싶었다.
후쿠오카(福岡)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 시간은 30분 정도. 비행기가 떴다 싶더니 내렸다. 무사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버스 승차장 2번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 모녀의 규슈 여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