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칠레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발디비아 숙소
김은덕,백종민
칠레에서 보낸 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
독일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발디비아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칠레 대지진'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가끔씩 지진이 일어나곤 하는데 우리가 머무른 패트리샤 아줌마네 집만큼은 지진 걱정에서 예외였다. 1960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다른 집들이 모두 무너졌을 때도 그녀의 집만큼은 살아남았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무려 70년 동안 말이다.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발디비아의 숙소는 20곳이 채 안 되었다. 그중 저렴한 비용으로 한 달을 머물 곳을 찾아야 하니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패트리샤 아줌마의 집은 센트로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은 마침 성탄절 전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 가족이랑 저녁 먹지 않을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비싼 물가와 사람들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남미 여행지 중에서도 칠레는 비교적 인기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칠레 현지인의 마을에 와서일까? 스페인 세비야가 '도시', 터키 이스탄불이 '사람'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면, 발디비아는 '도시'와 '사람' 둘 다 매력이 있었다.
집에는 패트리샤와 그녀의 남편 호르끼, 아들 잉글라스가 함께 살고 있다. 영어라고는 '굿모닝'과 '땡큐'밖에 모르는 이 집 식구들과 스페인어라고는 '올라(Hola, 안녕하세요)'와 '그라시아스(Gracias, 감사합니다)'밖에 모르는 게스트가 만났다. 아줌마는 노트북을, 우리는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번역 애플리케이션으로 겨우 생존 대화만 이어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잉글라스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단어만이라도 읊어주면 좋으련만 이 녀석, 공부를 '더럽게' 안 하는가 보다. 친구들은 다가와서 못하는 영어라도 재잘거리는데 '예스'와 '노'라는 말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번역기를 돌리기 일쑤다. 보다 못한 우리가 오늘부터 함께 영어 공부 좀 하자며 잉글라스를 의자에 앉혀 놓았다. 녀석, 웃으면서 그러겠다고는 하는데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는 결국 우리를 피해 여자 친구랑 놀러 나간다. 어째 우리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빠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