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는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이라는 깊은 늪에 빠졌다. 그 방황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치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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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입양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새라는 '정체성 혼란'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버렸다.
"입양인들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는 '뿌리가 없이 서 있는 나무' 같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 방황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다.
"아이를 낳게 되면서 생각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비록 저는 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야 하지만 내가 이제 누군가의, 내 딸의 뿌리가 되었다는 생각. 그 생각이 저의 방황을 잠재워 준 것 같아요."
지난 3월에 그녀는 첫 고국 방문 계획을 세웠다. 입양인들의 한국 방문을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다 보면 이 여행이 보통의 여행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해외 입양인들은 대체로 모국방문 시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 그것은 그 여행이 절대 혼자 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정의 파도는 생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 폭풍우가 되어 그들을 수도 없이 넘어트리고 주저앉힌다.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의 여정이다.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무게는 쇳덩어리보다 무겁고 아프다.
이 힘든 여정에 함께 할 동반자로 새라는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엄마'를 찾으러 '엄마'의 손을 잡고 고국을 방문한다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만, 새라의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두렵기도 했어요. 아이가 한국을 방문해서 생모를 찾겠다고 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흔쾌히 동행해주기로 했죠. 새라가 생모를 찾게 되든 아니든 저는 모두 괜찮아요. 난 그저 새라의 엄마로 내 아이 곁을 지켜주고 싶었거든요."
벚꽃 비가 온 세상에 흩뿌리며 내리던 4월 13일, 엄마는 딸과 함께 그녀의 또 다른 엄마를 찾아 고향인 대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오기 전 새라는 사실 대구지방경찰청으로부터 생모를 찾았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모는 새라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새라는 대구를 찾았다.
대구에 머문 닷새 동안 새라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으러 대구 시내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시장이며 공원이며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저 사람이 내 엄마일까?' 스쳐 지나가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을 바라보면서 새라는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새라는 잠시 머물렀던 보육원도 들렸다. 보육원은 새라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다. 서류에는 새라의 작명한 한국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그녀의 아기 시절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새라의 모습이 이상하다.
34년 전
34년 전 오슬로국제공항. 새라를 처음 건네받은 씨그너는 깜짝 놀랐다.
"She was wrong! (무언가 잘못됐어)"
새라의 얼굴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입양기관에서는 사전에 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으나 아이의 머리와 얼굴은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본래 새라는 미혼모가 아닌 정상적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위로는 오빠가 둘이나 있었다고 한다. 안면 이상인 아이를 낳은 엄마만큼이나 안면 이상인 아이를 입양아로 건네받은 엄마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둘 다 아이를 처음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건네받는 순간 다리가 풀릴 만큼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어요. 그냥 주저할 것도 없이 새라를 내 품 안에 감싸 안았습니다. 본능적으로 말이죠. 새라를 데려온 지 일 년이 지났지만 아이의 상태는 큰 차도가 없었어요. 얼굴도 그렇지만 손가락을 잘 가누지 못했어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수없이 고뇌했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새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정상적인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전 세계 한국계 해외입양인 20여만 명에게는 그 숫자만큼의 양엄마가 존재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입양인들의 굴곡진 운명만큼이나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혀 다른 인종의 아이, 아이가 겪어야만 했을 인종차별, 그리고 그것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부모들. 사춘기에 들어서면 폭풍 같은 정체성 혼돈의 시기가 시작된다. 우울증부터 자살 충동까지. 그들이 겪는 혼돈의 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또 곁에서 묵묵히 바라봐야 하는 것도 양부모들의 몫이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은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