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8일, 동화면세점 앞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대열.
안홍기
대법원의 국가배상 판결과 경찰청 지침 개정 후 사라진 듯했던 브래지어 탈의는 2014년 다시 문제가 됐다. 2014년 5월 18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연행된 여성들이 동대문경찰서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를 강제로 탈의 당했다(
나는 왜 동대문경찰서에서 속옷을 벗어야 했나).
파문이 커지자 24일 동대문경찰서장은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을 통해 "여성 피의자에 대한 신체검사 시 자살 또는 자해방지를 위해 속옷(브래지어)을 탈의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며 "규정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었으므로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26일 경찰청장도 "우리 직원이 분명 잘못한 것"이라며 사과했다.
위 집회 당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를 당한 피해 여성들은 2013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는 사안을 가지고 다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2018년 10월 법원은 (대법원 판례와 경찰청 수사국의 지침 변경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과거의 업무관행에 의존하여 원고들에게 브래지어 등을 강제로 탈의하도록 조치하였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고,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를 포기해 판결은 확정됐다(참고로, 이 사건은 필자가 수임하거나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건은 아니다).
경찰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브래지어 강제 탈의 조치를 포기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지행하면서 브래지어 강제 탈의는 유치장 시설 내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브래지어를 강제로 벗는 과정을 겪으면서 '안전한 느낌'이 아니라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경찰의 브래지어 강제 탈의 조치는 여성의 수치심을 건드려서 여성의 집회 참여 자체를 막고자 의도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여성들이 반인권적인 공권력행사가 없어지기를 희망하면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2008년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된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 인권침해 논란은 이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강제 탈의의 진짜 이유를 묻는다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티셔츠, 바지 등 겉옷 역시 목매 자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겉옷을 벗긴 채 유치장에 수용하지는 않는다. 과거 2003년~2008년 6월 유치장에서 목매어 자살한 사건은 총 7건인데 브래지어로 자살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고, 같은 기간 구치소·교도소도 자살 사고 73건 중 72건이 목매 자살(액사 및 교사)한 사건인데 여성 속옷으로 자살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2008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와 경찰청이 국회 주광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그런데 왜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가 자살 도구로 규정되었을까.
우리나라 경찰서 내 유치장은 대부분 부채꼴형이다. 유치인을 감시하기 쉽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유치실은 나눠져 있으나 시선과 소리가 넘나든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치인보호관(경찰)은 남성이다. 내가 면담한 피해 여성들은 이런 유치장 안에서 공개적으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고 브래지어를 벗게 되면 수치심과 무력감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겉옷을 걸쳤더라도 그 속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발가벗겨진 느낌으로 어깨와 허리를 펼 수 없고 조사를 받는 수사관 앞에서 당당히 앉아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나는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강제로 속옷을 벗어야 했던 경험들을 공유했기에 그 기분이 어떨지 깊이 공감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공권력은 집회 참여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함으로써, 이런 끔찍한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다시는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유치인의 인권을 다시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