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5월 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조화가 파손되기도 했다.
김경습
"우리는 이사급이고 관리자들이고 뭐고 다 은바가지라 그러거든. 은바가지(은색 안전모) 쓰고 올라온다고. 그날 공장장인가 뭔가가 온다고 평소에는 안 올라오던 하청업체 사장이며 관리자들이며 전부 나와서는 난리인 거야. 우리도 눈치껏 일을 하려는데 주위 청소부터 하래. 가서 청소하고 있으니까 또 한쪽에서는 일하라고 부르더라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진짜 너무너무 번잡스럽더라고."
이정은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해양 플랜트 마틴링게(Martin Linge)의 상부 구조물을 칠하는 도장공이었다. 마틴링게 프로젝트는 노르웨이와 영국, 유럽 대륙으로 둘러싸인 북해에 설치되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게 될 설비였다. 2012년 프랑스계 글로벌 에너지 기업 토털의 노르웨이 자회사(Total E&P Norge)가 삼성중공업에 발주해 2017년 6월 인도할 예정이었다.
거대한 해양 구조물은 모듈 단위로 제작해 이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틴링게 프로젝트의 상부 구조물은 네 개의 모듈로 구성되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를 맡은 것은 프로세스(process), 유틸리티(utility), 플레어(flare), 세 개의 모듈이었다(다른 하나는 주거용 모듈로 유럽 회사가 제작을 맡았다).
이정은이 있던 곳은 그중에서도 7안벽(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해 화물을 하역하고 승객을 승하선하도록 만들어진 구조물, 7안벽은 삼성중공업 사업장에서 가장 안쪽에 있다)에서 건조 중인 프로세스 모듈, 속칭 P모듈이었다.
은바가지들의 방문은 현장 노동자에게 늘 번잡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날따라 이정은의 마음이 더 뾰족해진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랬다니까. 노동절날 아침부터 이게 뭐냐고. 노동절은 쉬어야 되는데 쉬는 날 일한다고 위로는 못 해줄망정 뭐 때문에 은바가지들이 올라오고 공장장이 오느냐고 내내 투덜투덜거리면서 일을 했지. 어쨌거나 우린 돈 벌러 왔으니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잖아."
이정은의 말처럼 그날은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법정기념일이자 근로기준법에서 인정하는 유급휴일 말이다. 그러나 그날 마틴링게 작업장은 멈추지 않았다. 출근 기록에 따르면 이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는 1623명이 평소처럼 출근해 평소처럼 일했다.
이날 출근한 이들은 대개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흔히 물량팀 혹은 돌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물량팀이란 하도급의 분화된 형태로서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주로 단기간에 작업 물량을 처리하는 작업 팀을 물량팀이라고 부른다. 보통 물량팀장을 중심으로 10~30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건설 현장의 고용 형태인 십장, 팀장이나 제조업 내의 소사장과 유사한 고용 형태다.
형식은 하수급 계약을 체결하지만, 실제 작업은 원청(발주사)와 도급 업체의 관리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불법파견 용역이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발주사와 도급업체는 사용자로서 책임이 없다. 돌관(突貫)은 '갑자기 돌' 자와 '뚫을 관' 자가 결합한 단어다. 물량팀과 마찬가지로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공사, 또 이를 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정은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에서 도장 작업을 맡았던 김오성(남, 38세, 물량팀 도장 작업)은 그날을 "빽 없고 정직원 아닌 사람들은 반강제로 다 출근한" 날로 기억한다.
"출근 안 한 하청업체는 없었을 거예요. 그때 우리 회사 직원은 백 퍼센트 다 출근했어요. 억울했죠. 휴일에는 쉬고 싶은데."
김오성은 노동절에 쉬겠다는 의사를 팀장에게 표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해서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닦달뿐이었다. 납품 기한이 한 달 반가량 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마틴링게 프로젝트의 공정률이 예정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량팀이 대거 투입된 이유이기도 했다. 김오성은 이날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출근했다. 하청 노동자가 팀장 눈 밖에 나서 좋은 일은 없었다.
김오성은 1층에서 작업 지시를 받고 새 페인트를 준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오후 2시 반. 30분 후면 휴식 시간이었다.
"시간이 애매한 거예요.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작업 현장까지 빙 둘러 가게 되는데,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휴식하려니 너무 이르고. 그래서 일부러 3층까지 걸어 올라갔어요."
P모듈은 옆에서 보면 L자 모양으로, 높은 쪽은 6층, 낮은 쪽은 3층으로 되어 있었다. 6층까지의 높이는 65미터에 달했다. 3층 메인데크 쪽 일부 공간은 작업자들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있는 10분의 휴식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휴게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몇 백 명이 같이 쉬는 곳에 있는 거라고는 간이화장실 하나와 정수기 하나, 재떨이뿐이었다. 단출하다는 말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식 시간이 되면 실제로 이 공간에서 '휴식'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정수기는 뜨거운 물을 데울 틈이 없어 찬물만 토해냈다.
"3층에 제가 담배 피우는 공간이 있었거든요. 방향을 말하자면 남쪽이에요. 걸어 올라가서 3층에 도착하니까 40분쯤 됐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 자리에 가기가 싫은 거예요, 이상하게…."
김오성은 3층 데크에 멈춰선 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담배 피우자. 좀 쉬자. 일을 뭐 그리 힘들게 하노."
팀장은 볼일이 있다고 점심시간에 조퇴했으니 마침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잠시 후 친구가 김오성이 있는 곳으로 왔다. 공교롭게도 둘 다 담배가 없었다. 두 사람은 담배를 가진 동료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시가 되려면 아직 10분 가량 더 지나야 했다. 김오성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휴게 공간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오후 2시 52분
P모듈 3층 메인데크
"그때 봤죠. 2시 52분, 그쯤에. 왜 시간을 기억하냐면 화장실 하나 있는 거, 남자 한 사람이 거기 대변기 쪽으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늘 담배 피우는 장소, 그러니까 맨 구석 그늘진 자리에 네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크레인 신호수(안전을 위해 크레인 아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과 크레인 조종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사람.)가 올라온 거예요. 호루라기 불면서 물건 지나간다고, 커피 마시는 사람들 다 비키라고 해서 쳐다보니까 지브(jib) 크레인에 철제 수거함이 올려져 있어요. '수거함이네' 하면서 '요 녀석 왜 안 오지' 하고 있는데 쿵! 하는 거예요.
보니까 제가 늘 다니던 장소에… 수거함이 툭 떨어졌더라고요. 지브 크레인을 잡아주는 와이어가 있고, 와이어 중간에 샤클이라는 고리가 있거든요. 그 고리가 떨어진 거예요. 어어어 하면서 머리를 든 순간 뭔가가 휘이익 쾅쾅쾅! 다시 어어어 하는데 와이어 움직이는 소리가 또 휙휙휙! 났어요."
김오성이 사고를 목격한 바로 그 시각 이정은은 P모듈 6층에 있었다.
"작업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빨리 검사 마치고 가려고 2시 30분쯤부터 6층에 대기를 했지. 40분쯤인가 됐는데 반장이 검사 왔다고 우리보고 준비하래. 반원들이랑 대기하고 있는데 뒷사람이 '아, 저기!' 그래. 뒤를 보니까 골리앗 크레인이 우리 바로 앞 가까이에 있는 거야. 크레인 조종실 안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더라고.
우리는 맨날 멀리서만 봤으니까 신기했지. '쪼끄만 줄 알았는데 안이 넓네.' '두 사람이 있으니까 한 사람 쉬고 한 사람이 일하고 그럼 되겠네?' 농담하고 그랬어. '야, 근데 오늘 바람 너무 많이 분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골리앗 크레인도 일하나?' 그러다가 검사 왔다 그러길래 검사장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뭔가 퍽! 소리가 크게 나는 거야.
우리가 6층 위쪽에 있었는데 지브 크레인 붐대가 6층 아래쪽 벽을 한 번 탁 치고 콱 뿌러져 3층으로 내려간 거야. '뭐지?' 하면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아… 아…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버렸더라고…. 주황색 피스복 입은 노동자가 바로 내 밑에 있더라고. 그분이 압사돼서… 압사돼서…."
느닷없이 지브 크레인이 붕괴되면서 펼쳐진 참혹한 광경 앞에 이정은은 하얗게 얼어붙었다.
"애들이 가자 그러는데 다리가 안 떨어지는 거야, 안 떨어지더라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마음은 빨리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그러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지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니깐 같이 울게 되더라고…."
파워그라인더를 다루는 김재영(남, 41세, 물량팀 파워 작업)은 6층에서 지브 크레인이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을 목격했다.
"그날 아침에 야간조가 작업한 샌딩 가루가 바닥에 엄청 많이 쌓여 있어서 출근하자마자 청소를 했어요. 분진 백을 일곱 개는 채웠을 거예요. 그걸 채우면 내려야 되잖아요. 지브 크레인으로 분진 백을 들어서 밖으로 내린 거죠. 그것 다내려주고 나서 크레인이 뭐가 할 게 있었는지 붐대를 3층 데크 방향으로 세워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바로 옆에 골리앗 크레인이 있었어요.
감독관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작업자 중에 한 명이 '어어어' 하는 거예요. 군중심리라는 게 있으니 같이 쳐다보게 되잖아요. 보니까 골리앗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어요. 지브 크레인이 서 있는데 골리앗이 그쪽으로 계속 가는 거예요. 점점 가까워지는데… 와, 저거 칠 것 같은데. 서야 되는데, 서야 되는데 하는데도 계속 가더니 지긋이 밀어버리데요. 천둥 치는 소리 비슷하게 바바바박! 하더니 지브 크레인 붐대가 확 떨어져버리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비명 소리가…. 밖을 내다보니까 이미 난리가 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