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고양이가 잘 지내는 것에 대한 안심인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안심인지, 아니면 길을 떠도는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안심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안도감 비슷한 것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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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20대로 보이는 남매가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당혹스러워해서 나도 당황했다. 아마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주는 것을 싫어할까봐 그러는 눈치였다.
얼른 친절 미소를 장착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안도하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왠지 착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곤 하는데, 아무나에게나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우리 강아지를 진심으로(그렇다고 믿고 싶다) 반가워한다.
하루는 '수상해' 보이는 한 할머니를 포착했다. 풀숲에 들어가서는 계속 내 동태를 살피는 모습이 마치 어설픈 범인(?)같았다. '나 지금 수상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기운을 온 몸으로 뿜어내서 누가 봐도 의심을 살만 했다. 궁금해서 모른 척 하고 가보니 멋쩍게 웃으면서 "아휴~ 여기 고양이가 사네~" 하신다.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서 있는 풀밭 밑에는 깨끗한 담요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고양이 사료가 놓여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할지 표정을 살피시길래 얼른 안심시켜 드렸다. 그러자 바로 이야기 봇물이 터진다. "아기 때부터 봤는데 사람을 아주 잘 따르더라고", "사람 먹는 음식 주면 안 돼", "길에서 사는데도 깨끗해" 등등.
할머니 덕분에 우리 동네 길고양이 현황 파악을 했다. 더불어 할머니가 요즘 심장이 안 좋아져서 멀리 나가지 못해 속상하다는 하소연도 덤으로 들었다. 어쩐지 그런 수다가 정다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고양이가 잘 지내는 것에 대한 안심인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안심인지, 아니면 길을 떠도는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안심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안도감 비슷한 것이 들었다. 이어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온기가 올라왔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삶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도 빛나는 순간은 존재한다. 그 순간을 발견하느냐 지나치느냐는 개인의 몫. 별것 아닌 이런 순간들이 참 따뜻하다고 느끼는 요즘, 비슷한 결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았던 글이 바로 길냥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파트 앞 골목길 화단에 살던 고양이 화단이. 그 동네에선 꽤 유명한 길고양이란다.
"안녕. 잘 지내니, 나도 오가며 눈도장을 찍었었는데 외출이 뜸한 사이 녀석은 집을 옮겼다. 바로 코앞. 지하철역 입구 자전거 주차장 구석에 새집이 생겼다. 그 역시 화단이를 돌보는 누군가의 손길이리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들여다보며 챙기는 꾸준한 손길이 위태로운 생명 하나를 지키고 있었다."
길고양이를 돌보던 동네 주민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는 곳은 다르고 처한 환경은 달라도 어쩐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녀석이 앉은 자리는 봄이면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자리. 꽃 피는 봄이 오면 추운 얼음눈 대신 따뜻한 벚꽃눈이 펄펄 내릴 것이다. 녀석에겐 멋진 구경이 되겠지. 그러니 그때까지 부디. 지난겨울을 무사히 갈아냈듯이 올해 겨울도 무사히 살아남기를. 꾸벅꾸벅 조는 화단이를 보며 바랐다."
4월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산책길에 들어섰더니 벚꽃잎들이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벚꽃이 날리는 것을 본 강아지는 정신없이 벚꽃잎을 잡으러 쫓아다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있는데, 저기 멀리 서 있는 길냥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천지분간 못하는 까불이는 언제 철이 들려나' 하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아기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 위로 눈처럼 떨어지는 벚꽃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때 나도 비슷한 걸 바랐던 것 같다.
'기껏해야 길고양이의 수명은 3년. 태어나 봄을 맞는 건 단 세 번. 너한테는 몇 번째의 봄인지 모르겠지만 부디 이 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