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교를 지나면 차밭이 나온다. 봄날 이른 아침, 막 떠오르는 햇빛이
눈부신 차밭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김숙귀
그 정숙한 아름다움에 온전히 마음을 뺏긴 채 잎새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있는 동백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순간 바라보던 꽃송이가 눈 앞에서 송이째 똑 떨어졌다. 내 가슴도 따라 무너져 내렸다.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했던가. 꽃다운 나이에 적장을 유인하여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처럼 동백의 장렬한 낙화에, 또 그 섬뜩한 아름다움에 시린 가슴이 그저 떨려왔다.
어디선가 동박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절집의 아침을 깨웠다. 바로 곁, 대웅전에 앉아계신 부처님께서도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영화로운 인생도 찰나일 뿐이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듯했다.
땅 위에 핀 동백을 다시 마음에 피워올리고 극락교를 지나 차밭으로 갔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차밭에는 눈부신 아침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 그 청신함이라니... 온몸의 불순물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듯했다. 시려웠던 마음에 푸른 물을 들이고 만세루에 앉아 스님들께서 키운 차로 마음을 다스렸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 꽃 말이에요...'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가락은 들을 수 없었지만 봄날 선운사 여행은 참으로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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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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