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의 봄오색약수터 인근 집에서 양양방향에 있는 학교까지 1970년대엔 십리길이라 했다. 이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며 겨울엔 정말 고생스러웠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늘 즐거웠다.
정덕수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77년 형(2016년 10월 21일 작고)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어렸던 내가 밥을 해 먹어야 하다 보니 지각이 잦았다. 점심은 찬밥을 먹어도 아침과 저녁만큼은 새로 지은 밥을 먹던 문화 탓일 수도 있다.
알람 시계도 없고(시계 자체가 없었다), 눈 뜨면 곧장 밥을 짓기 시작하지만 아궁이가 달아 있지 않으면 불이 잘 들지 않으니 밥 하는 일이 고역이었다. 평생을 아궁이에 불을 넣으며 살아온 아주머니들도 바람이 불거나 하는 날이면 아궁이 앞에서 눈물짓기 일쑤인데 오죽했으랴.
조용한 마을이라 골짜기 아래 주차장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리면 곧장 달려가야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봄이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목구개울을 건너 승국이네 논을 지나면서부터 느긋하게 연초록 이파리들이 피어나는 나무와 꽃을 보며 걸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첫 시간이 끝나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 놀고 있는 날이 제법 될 정도로 느긋하게 온갖 것들을 눈에 담으며 학교엘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