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빛을 받은 제암산의 철쭉과 득량만장흥 들판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다도해 바다빛과 어우러져 장관이다. 득량만과 간척평야가 눈에 펼쳐진다.
최정선
남쪽 바다와 더불어 장흥호와 장흥읍을 관통하는 탐진강, 그리고 크고 작은 하천과 저수지들이 '물의 고장'임을 뽐낸다. 이곳에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탄 제암산(해발 807m)이 있다. 남도 제일의 자생 철쭉 군락지다. 이곳 철쭉 평원은 30년 수령의 철쭉이 30만평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분홍빛 철쭉은 눈이 부실 정도다. 마치 꽃들이 파도처럼 물결친다.
철쭉은 사자산 등성이와 제암산 정상, 장동면 큰 산에 이르기까지 총 6㎞에 걸쳐 일렁인다. 이맘때면 제암산의 곰재를 거쳐 사자산에 이르는 능선은 철쭉 화원으로 탈바꿈돼 있다. 이 구간이 제암산의 유명한 철쭉 군락지로, 활짝 핀 철쭉에 곳곳에서 탐방객들의 탄성 소리를 듣는 건 일상이다.
동행인과 첫발을 내디딘 장흥에서 알게 된 제암산 철쭉 축제. 다시 장흥을 밟는 날은 '제암산으로 가리라' 마음속에 점 찍어 두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장흥의 제암산이 모락모락 기억 저편에서 현실로 나왔다. 모두 황매산 철쭉에 대한 환상을 불태울 즈음... 밟지 못한 장흥의 제암산이 뇌리에 그대로 꼽혔다.
장흥군 북동쪽에서 보성군과 경계를 이르는 제암산. 분홍빛이 온 산을 덮어 하늘과 색 대비를 이룰 거라는 상상은 마음마저 들뜨게 했다. 봄꽃들이 속절없이 진 뒤, 분홍 물감으로 연초록 산자락 위에 풀어놓은 꽃이 바로 산꽃의 여왕, 철쭉이다. 하늘거리는 분홍 꽃잎이 고운 꽃이다.
진달랫과에 속하는 친구들이 있다. 진달래 그리고 철쭉, 영산홍으로 때론 혼란스럽다. 진달래와 철쭉은 구분이 가능한데, 철쭉과 영산홍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영산홍은 일본에서 개발한 관상용이란다.
철쭉은 자생종으로 바람 많은 곳에 잘 자라는 억척스러움이 있다. 우리나라 높은 산등선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은 것도 철쭉의 생명력 덕이다. 이렇든 저렇든 세 꽃은 알쏭달쏭하게 닮아 있다.
저질 체질이라 산을 잘 못 탄다. 산을 오른 지 5분이 지나면 등이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른다. 특히 주르륵 흐르는 콧물은 감당이 안 된다. 그래도 사진을 한번 찍어보겠다는 일념은 대단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산에서 만난 여러 사진가들이 그랬던 것 같다. 아직 사진을 배우는 단계라, 단지 그 풍경을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체력적으로 받쳐주지 못한 현실을 최대한 고려해 차를 몰고 산까지 갈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제암산에 대해 이리저리 연구해 보니 딱 그런 곳이다. 임도를 따라 차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우리나라 많은 산이 임도가 잘 돼 있다. 제암산 산행은 장흥공설공원묘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시작하면 된다.
진분홍 꽃이 빼곡히 핀 철쭉동산을 상상하고 우리는 간재까지 차로 올라, 그곳에서 걷기 시작했다. 10분만 가면 철쭉 평원이지만 벌써 몸이 지쳐온다. 목적지가 까마득한데 해가 뜨기 시작했다. 다시 오고 싶지만, 새벽에 오는 건 쉽지 않을 일. 그래서 막 찍었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이 수두룩. 하지만 눈으로 찍는 사진은 (초점이 정확하게 맞은) '칼핀'이다. 선명한 진분홍 철쭉과 검붉은 빛 하늘이 어우러진 천상의 화원 그대로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