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소장했던 장서윤동주는 고향 집에 8백 권 정도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윤동주 고향 집 한쪽 벽면을 모두 채웠다는 그의 장서를 보면 잡지와 책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독서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윤동주가 얼마나 대단한 독서가이자 장서가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 제1전시실에 전시된 윤동주 소장 도서.
백창민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생전에 정식 출간되지 않았다. 윤동주는 원래 시집 제목을 '지금 세상이 온통 아픈 환자 투성이'라는 의미로 '병원'이라 붙이려 했다. 졸업을 기념해 77부 한정판으로 시집 출판을 희망했지만 일제의 검열과 출간 비용 부족 때문에 시집 출간을 포기한다. 윤동주는 정식 출간 대신 자신의 육필로 수기(手記) 시집을 3권 만들어 지도교수인 이양하, 후배 정병욱과 한 부씩 나눠 가졌다.
1942년 1월 29일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오쥬우(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하고 4월 2일 도쿄 릿쿄(立敎)대학에 입학한다. 릿쿄대는 도쿄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메이지대, 호세이대와 함께 '도쿄 6대학'으로 꼽히는 명문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1941년 12월 7일, 미군의 도쿄 첫 폭격이 1942년 4월 18일이니까 윤동주는 긴박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도쿄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배를 타려면 도항증명서가 필요했는데 이 서류 발급을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필수적이었다.
창씨개명 5일 전 윤동주가 쓴 시가 '참회록'이다.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기 전 윤동주는 자신의 책과 시 원고, 쓰던 책상을 친구 강처중에게 맡긴다. 강처중은 연희전문 1학년 때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기숙사 핀슨홀 3층 한 방에서 지낸 친구다. 우리가 윤동주문학관에서 윤동주 소장도서를 만날 수 있는 건 친구 강처중이 소중히 간직했다가 윤동주 가족에게 전한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 윤동주의 독서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데, 절친이자 윤동주와 명동학교, 숭실중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문익환 목사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였다. 방학 때마다 사 가지고 돌아와서 벽장 속에 쌓아둔 그의 장서를 나는 못내 부러워했었다. 그의 장서 중에는 문학에 관한 책도 있었지만 많은 철학서적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한번 나는 그와 키에르케고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키에르케고르에 관한 이해가 신학생인 나보다 훨씬 깊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하숙했던 정병욱도 그의 독서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만큼 그의 독서 범위가 넓었다. 문학·역사·철학, 이런 책들을 그는 그야말로 종이 뒤가 뚫어지도록 정독했다. 꼭 다문 입술이 팽팽히 조인 채 눈에서는 불덩이가 튀는 듯 했었다.
그러고는 눈을 꼭 감고 한참 동안을 새김질을 하고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메모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읽는 책에 좀처럼 줄을 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그는 결벽성이 심했다고 하겠다."
정병욱과 서촌에서 하숙하던 무렵 윤동주는 학교를 마치고 혼마치(本町: 지금의 충무로) 일대와 적선동 '책방 순례'도 자주 했던 모양이다. 정병욱은 '하교 후 충무로 지성당(至誠堂), 일한서방(日韓書房), 마루젠(丸善), 군서당(群書堂) 같은 신간 서점과 고서점, 적선동 유길서점(有吉書店) 을 자주 순방하다가 하숙집으로 가곤 했다'고 회고했다.
윤동주는 어떤 책을 소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