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 이야기 한마당에서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김소연 운영위원장과 사진가 노순택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백기완 선생님.
정덕수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한마당은 이야기 손님들이 백기완 선생님과 맺은 개인적 인연을 소개하고 책에 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세가 있으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신다며 백기완 선생께서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김소연 운영위원장과 유홍준 교수에게 어떤 질문이었는지 재차 확인해 대답하셨다.
유홍준 교수는 "백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호령하시지만, 사실 곁에 사람을 많이 두십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백 선생님이랑 제일 친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책에서 주인공 버선발이 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백기완 선생은 이 장면을 더 자세히 설명하셨다.
"버선발이 맘 놓고 가져가라고 준 거야. 내거를 준 거라고. 근데 사람들은 내거라면 지구도 가져가고 우주도 가져간다고. 자본주의는 내거로 된 거다 그 말이야. 자본주의는 안 된다는 얘기가 버선발 이야기야."
'내 것'을 향한 집착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백기완 선생은 '내 것'을 불려가는 자본주의는 안 된다는 게 <버선발 이야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책에서 빼어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딘 가요"라고 묻자 마치 책을 몽땅 다 외우시기라도 한 듯 거침없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버선발이 굿판에 갔어. 굿판은 잔치라는 말이야. 거기서 한 아주머니가 떡을 먹으라고 주는 거야. 버선발은 남의 거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놀란 거라고. 거기다 김칫국도 줬는데 거기다 떡을 먹으니 목구녕에서 넘어갔다는 거야. 또 어떤 할아버지는 버선발 더러 잔치에서는 차려 입고 와야 한다면서 새 옷을 줬어. 동생도 있다 하니까 옷 하나를 또 주는 거야. 남의 옷도 차려 주는 게 굿(잔치)이라고…"
지난 번
"산불현장에서 함께 하며 읽었던 '버선발 이야기'"에서 자칫 지루할까 싶어 옮기지 않았던 내용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한 낯모를 아주머니가 "이봐 젊은이, 여기 굿판까지 와서 함께 어울리지 않고 그냥 가는 건 무언 줄 알가서? 밝은 달이 훌쩍 떠오르는데도 짐짓 등을 돌려대는 그런 못난 빼뚝이야 인석아, 덮어놓고 빼뚤어지기만 하는 빼뚝이, 알가서? 여긴 한바탕 굿판이야. 그러니 가더라도 이거나 하나 먹고 가" 하고 떡을 한 조박(조각) 집어 주신다.
버선발은 떡이라는 걸 태어나고 나서 처음 볼뿐더러 하물며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눈여겨보시던 그 아주머니가 한 술쯤 어깨를 덧없이 들썩 하더니만 물동이에 담겨 있는 김칫국을 한 바가지 덥석 떠주시며 "자, 이것부터 먼저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들게. 그래야 새름(정) 깊은 가위떡(마음이 담긴 떡)이라는 것도 그대로 꿀꺽하고 잘 넘어간다네" 그러신다.
버선발은 김칫국 바가지를 입에 대고 꿀꺽꿀꺽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핑, 하마터면 에맥없이(맥없이) 넘어질 뻔했다. 언뜻 엄마 생각이 뭉클했던 것이다. 이를 본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왜, 아우들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건가?" 하고 널찍한 시루떡을 또 하나 집어주신다.
버선발은 바람이 아니 부는데도 가시 하나가 홱 눈에 들어온 것처럼 뜨끔거려 막 돌아서려고 했다.
바로 그 참이다. 웬 할아버지가 "자, 이걸로 저 뒤켠에 가서 얼떵(재빨리) 갈아입게. 여기 굿판에 오려면 말일세. 옷은 좀 빨아 입고 와야지, 자네가 걸친 그게 뭔가? 너덜너덜 누더기도 아니고. 어서 가서 이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니까."
그제야 버선발도 이 굿판의 판놀음이라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어련한 듯 어림하고선 "제 아우도 와 있는데요" 그랬다.
"그으래? 자네 아우도 왔다고? 그렇다고 허면 한 벌 더 가지고 가서 갸도 갈아입혀야지. 어떤 굿판이건 굿판이 한술 벌어졌다 하면 이 새 옷이 너덜너덜 다 닳아지도록 춤을 춰야 하는 거라고. 사람의 뜻은 채가 되고 사람의 마음은 긴북(장구)이 되어 가분재기 휘몰아치는 휘몰이, 그게 바로 이 벌개(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세상) 따위는 발칵 뒤집어엎어버리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벗나래(참세상)를 만들려는 몸짓, 그게 춤이라는 걸세, 알가서?" - <버선발 이야기> 125-127쪽, '참짜 춤꾼' 중에서
<버선발 이야기> 가운데 이 대목을 읽으며 난 백기완 선생께서 떡을 나눠주는 아주머니인 동시에 새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며 새 옷을 내어주는 할아버지 그 자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굿판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도 일러주는 따뜻한 마음으로 곁을 내어주는 그 모습 아니시던가.
너나없이 자신이 얼마나 백기완 선생님과 더 친분이 깊은지 자랑한다. 그 친분이란 게 그만큼 백기완 선생님을 피곤하게 매달려 얻어진 결과란 걸 알고 저럴까 싶은 적이 많다.
떡을 내주고 김칫국을 먼저 먹고 떡을 먹어야 된다고 일러주고도 새 옷을 갈아입게 한 뒤 굿판에서 어울리는 방법까지 모두 배웠으면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세상과 나누어야 된다. 선생님과 얼마나 친한지 자랑할 게 아니라, 선생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더 잘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게 도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