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은 줄기꽂이 성공률이 높다. 새 줄기가 아니라 묵은 줄기를 꽂았는데 다행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제라늄은 키가 작아도 꽃을 잘 피운다.
김이진
그렇게 제라늄과 함께한 세월이 6년쯤 흘렀다. 그야말로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초라했던 녀석은 줄기가 단단하게 목질화되었고 풍채가 위풍당당하다. 어린 시절 고약하게 느껴졌던 냄새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제서야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강팍한 살림을 꾸리던 엄마가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 큰 맘 먹고 화분을 사기도 하고, 동네 이웃집에서 줄기를 얻어와 식물을 키우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내 눈에는 그깟 손가락만한 식물 줄기 몇 개 얻어오면서 연신 고마워하고 신나하는 모습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의아했었다. 엄마에게는 이 식물들이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반려식물이었겠구나.
제법 괜찮은 녀석이다. 옆에 두면서 지내 보니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무수히 식물 기르기에 실패하고 자책을 하던 내가 제라늄을 키우면서 마음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었다. 나도 잘 키울 수 있구나! 사실은 내가 잘한 건 별로 없고 제라늄이 생명 근성이 강하고, 좋은 환경을 만난 덕분이지만.
환경에 까다로운 식물이 있다. 희소성 있는 식물이 대부분 키우는 게 어렵다. 작은 것에도 예민하고 카탈을 부리는데 물 주는 주기는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분갈이를 하면 한번씩 앓아 눕기도 하고, 꽃 피는 기간은 아주 짧게 제한하는 녀석들이다. 비싸게 군다. 대신 이런 식물들은 신경 쓰이게 하는 만큼 아주 예쁜 꽃을 피워 심미적인 만족감을 채워준다.
나는 그냥 제라늄의 덤덤함을 좋아할란다. 1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내 옆에 있어 줄까.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구절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처럼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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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실패 끝에... 나도 잘 키울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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