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2월 24일 영화 <재심>을 관람하기 전, 자신이 과거 변호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장동익씨(가운데), 그의 재심을 추진하는 박준영 변호사(왼쪽)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993년 4월 16일, 교도소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장동익씨 앞으로 문재인 변호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3년 전 부산시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친구 최인철씨와 함께 한 여성을 강간 후 살해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1심과 2심에서 억울한 재판을 받고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 2013년이 되어서야 옥살이를 끝내고 출소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9년 4월 17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아래 과거사위)는 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였던 두 사람의 자백은 경찰의 고문 끝에 나온 거짓 진술이었고, 사건기록과 증거들이 조작됐다고 밝혔다. 또 장씨와 최씨의 허위자백이 객관적 자료들과 어긋나는데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고문 등 잘못된 수사 관행뿐 아니라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객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당시 수사 검사는 ▲ 숨진 여성의 몸과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손수건에서 정액반응 양성이 나왔고 ▲ 혈액형 시험 결과 AB형일 수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를 억지로 연결해 AB형인 최씨가 여성을 강간했다고 봤다. 과거사위는 이 일이 "피의자 처벌에만 급급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법의 근본원칙을 외면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하면 검사가 자백을 검증하는 기준 등을 세우고, 수사기록의 진실성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와 이를 위반한 검사·수사관의 징계 절차를 마련하라고 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에 관련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보관해온 변론기록 등이 중요한 자료였다. 또 눈이 나쁜 장동익씨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과거사위는 이 점도 반영해 중요증거물 기록 보존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이들을 조사할 때 그 과정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자를 반드시 동석시켜 권리 보장할 수 있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최인철씨와 장동익씨의 재심을 추진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과거사위 권고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만져줬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우리 주장 객관적으로 확인... 피해자 마음도 달래줘"
- 17일 법무부 과거사위에서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재심 추진해온 변호사로서 어떻게 봤나.
"우리가 아무리 밖에서 증거를 찾아 주장해도 공적 기관에서 확인해주고 밝혀주는 것의 의미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 이 사건도 많은 언론 보도로 문제점이 부각됐지만 우리가 찾지 못한 증거가 있을 수 있다. 또 우리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줄 의미 있는 활동이 필요한데, 그걸 진상조사단에서 했다."
- 보도자료도 A4용지 22쪽에 달하는데, 조사 결과가 매우 상세하게 담겼더라.
"아주 상세하다. 또 조사를 주도한 이정화 검사가 사람 마음을 많이 만져줬다. 장동익씨가 '검사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사람도 있구나' 하더라."
- 진실을 밝힐 뿐 아니라 피해자들 마음까지 어루만져줬다는 뜻인가.
"그렇다. 물론 (수사나 조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의심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볼 때 공권력 피해자인 게 분명하다면 그땐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그게 진정한 위로고 회복이다. 그게 법무부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출범 목적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이뤄졌다.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만이라도 위로해준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얻는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나 삼례슈퍼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재심이 임박했어도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했다. 이 피해자들의 마음을 만져주면 그들에겐 조금 버틸 힘이 생긴다. 이번 조사단이 그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