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에서 있은 '변호사시험을 점검한다' 토론회 모습.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16일 국회에서 열린 '변호사시험을 점검한다'는 토론회는 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이하 법전교협),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공동주최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신규 변호사 수 통제(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통제)로 인한 '로스쿨 교육의 황폐화'에 대하여도 심층 논의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기도 한 박종현 국민대 법학과 부교수는 미국 변호사시험의 경험자들을 심층면접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변호사시험에선 매년 비슷한 패턴의 예측가능한 문제들이 출제된다. 또 판례를 직접 묻는 문제가 아니라 기본원칙을 알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문제들이 출제된다. 우리나라 변호사시험에서는 판례, 특히 최신 판례의 암기가 매우 중요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을 직접 준비하는 수업은 없다. 미국 로스쿨생들은 사설기관 바브리(Barbri)의 8주 코스의 온라인 강의 등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한다. 우리나라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 대비 수업들이 날로 늘며 로스쿨이 '고시학원화'되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고시학원화에는 로스쿨생들의 수험적합적 교육 요구 탓이 큰데 미국 로스쿨생들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미국 로스쿨생들이 변호사시험 대비 교육을 하지 않는 로스쿨에 불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변호사시험이 '통과하기 어렵지 않은 시험', '쉬운 시험'이기 때문이다. 쉬운 시험이 수준 낮은 시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변호사시험의 객관식 문제들은 전부 사례형 문제(법지식을 현실 사안에 적용한 응용된 형태의 문제)다. 그러나 구석에 있는 지엽적인 내용, 너무 많은 내용을 출제하지 않아 미국 로스쿨생들은 위와 같이 8주 정도만 훈련하면 무난하게 이를 통과한다.
즉,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 쟁점 도출 능력에 초점을 맞춘 시험'이라서 부담이 크지 않은 것. 그래서 미국 로스쿨생들은 변호사시험 당락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변호사 자격 취득 이후를 신경쓴다. 로스쿨에서 인기 있는 수업은 변호사시험 대비 수업이 아니라 전문변호사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심화과목들이다.
둘째, 미국의 변호사시험은 '지식 암기'가 아닌 '쟁점 도출과 논리적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는데, 로스쿨의 '변호사로서의 실무 교육'에 충실하다보면 자연스레 변호사시험 준비가 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미국 로스쿨 교육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리서칭(reserching)과 라이팅(writing)이 핵심요소다.
미국 로스쿨생들은, 먼저 교수가 다음시간에 다룰 사실관계를 제시하면 그 속에서 쟁점을 도출하고 그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예습을 한다. 다음엔 수업시간에 교수와의 소크라테스식 문답 과정에서 사고의 폭을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그 확장되고 정립된 생각들에 대한 논리적 글쓰기 훈련을 받는다.
실제 변호사시험의 에세이 시험, 즉 기록형 시험(소장 등의 법문서 작성 시험)에서도 리서칭과 라이팅은 여전히 중시된다. 응시자들은 '이전 작성문서, 초안, 인터뷰, 계약서, 신문자료, 경찰 리포트 등이 담긴 파일'과 '관련 판례, 법령이 담긴 라이브러리'를 제공받아 이를 참고하며 법문서를 작성하게 된다.
법문서의 형식과 판례 요지 등을 최대한 오래, 많이 오래 암기했다가 시험시간에 최대한 빠르게, 많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법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우리나라의 기록형 시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박 교수는, "'여러 자료들 중에서 관련된 것을 찾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진짜 실무에서 필요한 능력"이라면서 "우리도 단순암기에서 벗어나서 이런 능력을 키우고 검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자인 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신의 미국 로스쿨 재학 경험을 언급하며 박 교수의 발제 내용에 공감을 표했다. 또 연구자로서 한국 로스쿨을 초기 모습부터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로스쿨의 현 교육 황폐화는 사실 도입 초기부터 우려되던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로스쿨에는 입학정원과 변호사 자격 취득자 수에 대한 제한 자체가 없는데 우리나라 로스쿨은 미국과 달리 도입 초기부터 '정원 내지 수 통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언제고 터질 문제였다는 것.
최 연구위원은, "미국 로스쿨 제도에도 인가 시스템이 존재해도 우리와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고 특히 출구(변호사 자격 취득)의 통제는 거의 없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로스쿨 입학정원을 점진적으로 늘리기로 해놓고 이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이중적으로 앞뒤('로스쿨 입학의 문'과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 문')를 다 틀어막고 있어 로스쿨 교육이 심각하게 파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법조계가 (미국 등의) 로스쿨제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해 생긴 문제로, 이제라도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