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선 센터장은 성동구에서 신반장으로 통한다. 그는 청소년 복지분야에서만 20년 7개월을 근무했다. 현재 그의 관심은 교육, 청년, 주민으로 확장했다.
원동업
작은 권리 쟁취하고 궁지 몰린 성수동 제화노동자들
"이 곳을 제가 만들었어요."
그건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의 '제작'이다. 형광등 대신 검은 막대 조명을 사다 달고, 병원 같은 흰 벽을 그레이로 색칠하고, 키친을 넓게 만들어 작업자를 배려한 그런 실내 구조들 따위 말이다.
그건 그가 처음 복지사 이력을 시작했던 1996년 1월 3일부터 그의 일이기도 했다. 그의 청소년 시설 입사 분야는 전기 소방 등 시설 관리였다. 그러나 업무를 대하는 그의 태도나 관심은 자연스레 밖으로 드러났고, 1년여 만에 청소년 파트로 업무 변경이 이루어진다. 그를 눈여겨 본 시설 수녀님의 적극적 추천 때문이었다.
수제화 카페 <수다>에서 만났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성수동 수제화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성수동에선 제화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뜨겁게 진행됐고, '승리'했다. 같은 해 5월 제화업체 텐디가 '투쟁승리로 임금을 인상하고, 퇴직금을 받게된' 데 따른 자극과 자신감으로 성수동 노동자들도 들고 일어났던 것.
그후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성수동 제화공장이 줄줄이 폐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초부터 현재까지 지속됐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갖고 가는 마진율 40%와 비교해 5%의 공임을 받았던 제화공들의 작은 '권리 쟁취'가 오히려 그들을 사지로 몰아대는 현실은, 아팠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 11인의 한국 리더들에게 이 시대의 키워드를 물었던 인터뷰집을 봤다. 조한혜정 교수는 '패닉'을 말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봤다. <선망국>이란 책을 내셨더라. 우리는 먼저 망하는 국가다. 누구도, 아무데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거다."
청소년 시설 관련자로서, 그는 조한혜정 교수를 알고 있었다. 조한 교수는 서울시 '하자센터'를 운영했다. 청소년 시설임에도 '흡연 시설'을 만들고, 대안학교를 세우고, 탈학교 아이들의 '노리단'을 만들어 놀이를 기업으로 연결했던 경험을 그도 나누었다. 신 반장은 어떻게 현실을 보고 있을까?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진행시켰다. 이를 위해 가족까지 희생해 가며 과한 노동을 했다. 그 긴 와중에 '개인'이 사라졌다. 우리는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서 살았다. 나 역시 성동구청년지원센터 신상선입니다, 이렇게 인사한다. 어디 관심있는, 책읽는 누구라고 밝히지 않는다. 우린 개인이 없다. 개인의 비전과 고민 위에서, 그들 자체를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누가 보여 주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