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앞에서 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박선욱공대위
인권운동사랑방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라는 작은 자료집을 새로 발간했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나누기 위해 2017년부터 공부해 온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픔도 아니고 피해자의 권리라니 어색하기도 하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내용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무시되거나, 거의 실현되지 않는 내용이라서 그럴 것이다.
자료집에서는 재난참사를 당하고 난 뒤, 사건 현장 및 사고 순간에 '살아나올 권리'로부터, 생존자와 그 가족, 실종자와 그 가족, 희생자와 그 가족, 구조 및 지원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권리를 두루 살피고, 마지막으로 진실, 정의, 안전, 회복, 기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이 중 정의에 대한 권리는, 재난 참사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의'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묻고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는 과정은 피해자 뿐 아니라 재난참사를 목격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정의 경험의 첫 출발은 사과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로서는 자신이 재난으로 입은 피해와 고통이 나의 잘못이나 불운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권리를 산업재해 피해자 및 그 가족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 피해자 및 그 가족에게 정의의 권리에 대한 욕구가 더 뚜렷할지도 모른다. 재난참사의 경우, 책임자가 매우 간접적이고 폭넓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산업재해는 아주 분명한 사고의 책임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사고를 방치한 채 회사를 경영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니 산업재해 피해자 및 가족에게도 모든 회복의 출발은 안전하지 못 한 일터를 그대로 운영한 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일 것이다. 그 뒤 책임자를 처벌하고, 책임 있는 사과를 받는 것, 바로 그 책임 있는 자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와 회복의 권리에서 중추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기업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주, '재난참사유가족과 함께 하는 영화 <생일> 시사회'에 참석해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 시작 전 식사 자리의 이야기 도중, tvN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이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이용관님은 "우리 아이 엄마는 CJ E&M, tvN에서 대표가 와서 고개 숙이는데도 사과도 안 받았습니다. 용서할 생각이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미숙님은 조금 의견이 달랐다. "사과는 받아야죠. 저도 사과는 하라고 했지만, 용서는 안 할 거예요. 용서는 못 하죠."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산재가 승인되고 나서도 병원이 사과 한 마디 없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대화였다. 와서 사과를 해도 용서해줄 수가 없고, 용서가 되지가 않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 얘기다.
기업살인법으로도 알려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