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으로 바리스타에 뛰어든 조항균씨(충남 당진)
당진시대
100세 시대. 일해 온 날보다 은퇴 후 살아갈 날이 더 긴 요즘, 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숙제다. 일할 때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생 이모작'은 필수다. 젊은 시절 청춘을 다 바쳤던 직장에서 은퇴한 뒤, 노년에 접어들 무렵 또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비단 돈벌이 때문만은 아니다. 은퇴 후 30~40년의 여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학소년 철강업에 뛰어들다
서산시 부석면 출신의 조항균(67)씨도 마찬가지였다. 철강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31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청춘을 바친 노력의 대가가 억대 연봉으로 통장에 찍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그에게도 인생 1막의 끝이 다가왔다.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할 시기, 막막했던 그는 우연히 '커피'를 만났다.
젊은 시절엔 신문기자를 꿈꿨다. 글을 읽고 쓰고, 몽상하고 비평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인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사의 문턱은 높았고, 현실의 벽 앞에서 그는 한국 경제성장을 한창 이끌었던 철강산업과 관련해 야금학을 뒤늦게 공부했다. 마침 포항제철소(현재 포스코) 입사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철강업계에 몸을 담갔다.
현실은 혹독했다. 문학을 사랑하던 그의 성향과는 달랐다. 조직 사회는 경직돼 있었다. 조씨는 "정말 싫었지만 무능하고 나태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일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그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빠르게 승진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악착같이 버텼어요."
포항에서 광양으로
광양제철소 건설 당시 창립멤버로 발탁된 그는 업무에 앞서 6개월간 독일 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한국은 승용차 '포니2'가 갓 출시됐을 무렵으로 자동차가 귀했고, 해외여행 또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떠난 곳에서 그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신기했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는 모습도 새로웠다. 서양 문화에 관심 많았던 그에게 당시 독일 사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또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씨는 "벤츠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엔 노숙자도 있더라"며 "유럽에 대한 환상이 컸지만 여러 사람이 뒤엉켜 사는 모습은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곳에 가면 젖과 꿀이 흐를 줄 알았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6개월 연수를 끝내고 오니 그동안 이상주의자였던 제가 현실주의자가 돼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