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현장 실습의 문제점과 노동인권 교육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 장면. 왼쪽 첫번째가 하인호 교사.
교육희망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망 사고(2016년, 19세 비정규직 노동자), 제주도 생수 공장 사망 사고(2017년, 18세 특성화고 학생), 태안 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사망 사고(2018, 24세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답답하고 슬픈 소식이 들려올 때면 생각나곤 하는 한 사람이 내겐 있다.
1954년생 특성화고 교사 하인호. 이유가 있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개선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국가나 사회로부터 외면당해온 노동인권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인데 교사 하인호야말로 '노동인권교육운동'의 대부이기 때문이다.
왜 대부인가. 그것은 1981년 사립인 경인여상(현 인천보건고)에서 상업 교사가 된 후로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일별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 산하 실업교육분과장(1993),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2002), 교육혁신위원회 직업교육전문위원회 전문위원(2004),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 공동 집필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창립 참여(2005) 후 현재까지 활동, 직업교육진흥국민연대 사무국장(2007), 그리고 인천교육희망네트워크 공동대표(2017).
실업 교육, 직업 교육, 노동인권 교육
우리는 대개 '교육문제'하면 입시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들부터 떠올리기 십상이다. 살인적인 장시간 공부 노동, 성적 비관 자살, 공고한 대학 서열, '학종'과 '수능' 사이의 딜레마 등등. 그러나 교사로서 하인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핵심 키워드는 처음부터 실업 교육, 직업 교육, 노동인권 교육이었다.
그래서 먼저 물었다. 실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과 노동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게 뭐였느냐고. 첫 학교인 경인여상 얘기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그건 건너뛴 하인호는 복직(그는 1992년 해직교사원상회복추진위원회 인천 추진위원장으로서 해직을 당했었다)을 했던 학교 얘기를 하나 꺼냈다.
"1994년 여상으로 복직했는데 졸업생들이 은행에 취직하려면 '키 163m 이상, 몸무게 53kg'라는 조건을 통과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로선 좌시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교조는 아직 그런 문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이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여성민우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서 함께 무려 43개의 기업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한다.
"이 일을 계기로 조기 취업 형태로 운영되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이 가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8여년이 지난 후 마침내 전교조에도 실업위원회가 구성(2002)되고 그는 초대 위원장이 되는 것이지만 한시바삐 '실업계고 현장실습 문제'를 사회 문제화시키고 싶었던 그가 찾아간 곳은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의 실태와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하인호는 "아르바이트 뿐 아니라 실업계고의 현장실습 또한 그 문제가 심각"함을 알렸고, 참여연대와 함께 현장실습 개선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교조는 여전히 실업계고 문제를 전교조의 주요 사업으로 가져올 만큼의 역량은 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교육' 아닌 열악한 노동 강요받는 특성화고 학생 현장실습은 폐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