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 회담하는 정경두 장관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019년 4월 1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본청에서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 장관 대행과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작권 환수로부터 전작권 환수로 이어지는 한미관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유도해왔다. 이를 촉진시킨 것이 북핵 위기 조성이다. 베를린장벽 붕괴(1989.11.9.)와 동서독 통일(1990.10.3.) 그리고 구 소련 붕괴(1991.12.26.)로 이어진 탈냉전의 가파른 호흡은 한반도에서도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검토하는 등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재검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더욱이 남북한이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12.13.)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12.31.)을 발표하는 등 주도적으로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진행시켜 나감에 따라 미국은 동서냉전 종식에 따른 세계전략을 재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맥락에서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가시화하기에 이른다.
그 출발점이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의 경우, 1991년에 미군주둔협정 기간이 만료되면서 반미시위가 격화돼 1992년에 완전 철수가 이뤄짐에 따라 태평양 방어선 유지를 위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증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1991년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관한 방위비분담을 위한 특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한반도문제의 한국화의 환경 조성을 위한 주한미군 철수가 아닌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위한 방위비분담으로 패턴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 견인력이 바로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의 절대적 명분은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의 안보불안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군사전문가 제임스 F. 더니건은 <현대전의 실제>(How to make war, 현실적 지성, 1999)란 책에서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양과 질적으로 판단해 국가 순위를 매겼다. 이 자료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그는 1995년 기준으로 북한의 전투력을 한국의 약 40% 수준으로 평가한 바도 있다.
한국 국방부는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군이 주한미군과 본토 미군의 증원 없이 단독으로도 북한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한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미국의 핵우산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은 이미 닉슨독트린에서 보장한 것이다. 2009년 9월에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역시 주한미군과 본토 미군의 증원군 없이 북한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의 예비군 동원도 제외시켰다. 그렇지만 전작권 환수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 불안'임을 어쩌겠는가.
북한의 핵무장력 완성 선언은 한국의 안보 불안을 극대화시키면서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북한의 6차 핵실험(2017.9.3.)과 신형ICBM인 화성 15호 시험발사(2017.11.29.)로 북핵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더 이상의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차단하기 위해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2018.4.20.)을 통해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전환 선언과 함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동결'을 선언한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종전(終戰)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총력을 집중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남북한의 역량으로는 한반도문제의 국제화 흐름을 되돌려 놓기에 역부족인 형세다.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그리고 남북군사합의마저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장벽을 넘지 못하고, 북미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을 노딜로 귀착시킨 것이 바로 오늘 한반도 문제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기(level playing field)
초등학교 시절 학교운동회의 대미를 장식했던 전교생 줄다리기 경기는 삼판양승제로 진행되곤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첫 번째 판에서 이긴 편이 항상 마지막 판에서도 승리했다. 처음에는 원인을 몰랐는데 점차 운동장 구조에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양 팀의 위치를 정하는 동전 던지기에 목숨을 걸었던 경험이 생각난다. 아예 체육 선생님이 위치를 미리 정해버리면 게임은 보나마나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야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환경 조성의 관건은 무엇보다 먼저 비대칭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고 북미관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평화는 강자 쪽에서 비대칭관계를 균형 있게 잡아주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정의가 '약자를 보호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는 이치가 이를 말해준다. 약자인 남북한이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실현을 통해 궁극적인 북핵 해결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표명했다면, 강자인 미국은 그 과정을 보호하면서 세계전략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990년대의 북핵 위기는 공산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버티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 전략의 산물이다. 북미기본합의서의 채택도 1994년의 군사적 조치가 무산됨에 따라 압박의 강도를 늦추는 지연전술이었을 뿐이었다. 이때 한국정부는 미국의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준비에 대해 통보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이처럼 한심한 처지 탈출을 위해 작전통제권 환수를 서둘렀고 겨우 평작권 환수를 실현시켰던 것이다.
이후 북핵 위기는 국제화의 길을 밟는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그리고 이에 따른 남북교류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는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대로 한반도로부터의 해결을 넘어 국제무대인 6자회담 테이블로 옮겨졌다. 6자회담에서 6.19공동성명(2005)과 2.13합의(2007)가 도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은 미궁에 빠진다.
결국 이후 10년에 걸친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북한의 6차에 걸친 핵실험, 그리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한반도 문제는 이제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국제화'로 빠져들고 말았다.
4월 11일, 한반도 상황 개선시킬 묘책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