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산불누가 보더라도 송림이 아닌 그 너머 건물 같은 게 탄다고 생각할 광경이다. 이 화염이 치솟은 지점을 가리키려 보광사가 탄다고 했다.
정덕수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그저 본능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지도라도 봤으면 제대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보광사를 지척에 둔 지점에서 엉뚱하게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불당골부터 들리게 됐다. 다시 영랑호반길 47번지 일대를 둘러본 뒤 '더 이상 속초에서는 크게 불이 번지지 않겠다'라는 판단이 섰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방진 마스크 하나만 챙겼다면, 그리고 뭔가 집에서 나올 때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헤드랜턴을 빠트렸다. '1300루멘 손전등과 헤드랜턴이 집에 있으면 뭐하나 이럴 때 필요한 걸 깜빡하다니.' 하지만, 그 시각에 택시밖에 없는 교통편이 야속하다.
시각은 이미 5일 오전 3시가 훌쩍 넘었다. 그길로 현장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이동해 숙소를 잡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부터 한 꼭지 보냈다.
숙소에서 속초시청과 고성교육지원청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는 단 2개, 그러니까 각 하나씩이다. 하나는 5일 오전 4시 40분 "속초시 미시령로 주변 산불 확산 중에 있음, 인근 주민들께서는 대피만전 및 아침 차량이동을 자제바랍니다"였고, 다른 하나는 오전 6시 58분에 "2019년 4월 5일(금) 산불로 고성지역의 모든 학교는 휴업함을 알려드립니다"였다.
이 두 메시지로 나는 '산불의 진행은 더 이상 없다, 이미 불길이 휩쓴 지역에서 얼마간 불은 유지되겠지만 날이 밝아 장비가 보강되면 어렵지 않게 진화되겠다'는 판단이 맞았다는 게 확인됐다. 이 메시지 아니었다면 기사 하나만 송고하고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갈 뻔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기사 하나를 더 서둘러 보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현장으로
기사 두 꼭지를 보내고 시각을 확인하니 5일 오전 8시 30분, 나갈까 생각했으나 다음 기사로 사용할 사진을 정리하며 오전 9시 3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벽에 서울에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속초로 왔다는 이희훈 <오마이뉴스> 사진팀 기자와 통화를 했다.
그에게 "지리도 서툴러 일단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시간, 휴식을 위한 배려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 하지만 더 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이희훈 기자는 "지금 고성에서 촬영하고 있다"라고 한다.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뒤, 소음이 섞여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그는 "정덕수 기자님은 이 지역에 계시니 잘 아시겠죠? 고성산불… 행정복지센터…"라고 말했다. 행정복지센터가 뭐지 생각했다. 이후 나는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이니까 토성면 주민센터를 찾아가시면 될 거 같다"라고 답했다. 이 기자는 "그런 것 같다, 전 거기로 가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날도 밝았고, 이 기자가 토성면 주민센터를 찾아가면 고성 지역의 현장상황은 내가 살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그러면 나는 따로 이쪽에서 보광사 인근 화재 상황을 살펴보고 잔불 정리하는 현장을 살펴보겠다,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